"정말 짜증나는 사람들이야. 이 땅에 발을 딛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이
마치 별천지에서 온 듯 하니 이해못할 족속들이란 말이야. 물건이라면 부숴
버리고 부부사이라면 갈라서면 그만인데,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망년회자리에서 어느 한 친구가 정치인을 향해 분에 못이겨 내뱉은 말이다.

일종의 저주인 셈이다.

감정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많은 사람들이 정치인에 대해 대충 이런 생각들을
갖고 있다.

어떤 사람은 정치인 얘기라면 신물이 난다며 손사래를 젖는다.

정치혐오증이 극에 달한 느낌이다.

지난 일년을 뒤돌아 보면 이러한 분위기는 충분히 이해가 갈만하다.

연초부터 국회 529호실 난입사건, 옷로비, 파업유도, 언론문건 등으로 어느
하루 영일이 없는 정쟁속에 일년을 보냈다.

그 지긋지긋한 옷로비사건은 8개월을 끌고 있으나 아직도 결론이 난 상태는
아니다.

한켠에서는 환란의 여진으로 생존의 투쟁을 하고 있는 터에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국민생활과 무관한 사안을 두고 꼬박 일년을 허비한 것이다.

지난해는 세풍이다 총풍이다 해서 한 해를 보냈었다.

6.25이후 최대 국난이라고 일컫는 IMF체제 2년 동안을 목소리만 높인
정쟁으로 허송한 셈이다.

도대체 직장을 잃은 실직자가, 의지가지 없는 무의탁 노인이, 부모운명에
짝지어진 결식아동들이 정치 돌아가는 꼴을 보며 뭐라했을까.

원망을 넘어 한이 맺혔을 것이다.

선진국은 물론이고 우리의 경쟁국들 조차도 뉴밀레니엄이다, 21세기다 해서
수년동안을 준비해 왔다.

국가의 지향점을 정하고 밀레니엄상품을 내놓는 등 국리민복을 위해
철저하게 국가차원의 역량을 기울여 왔다.

미국은 로마제국 오토만제국의 흥망사를 연구하려 수십명의 학자들을
유럽.중동에 파견하기도 했다.

미국의 영광을 다음 세기에도 누리겠다는 의도다.

향후 10년 동안의 흑자계획도 마련했다.

중국은 일본을 추월하고 미국을 따라잡는 50년 장기계획을 수립했다.

일본 역시 장기침체에서 벗어나 정보통신분야에서 대반격을 시도하겠다고
공언했다.

이같은 세기적 대전환기에서 우리가 하는 일이라곤 고작 선거구제가 어떻고,
공천이 어떻고, 합당이 어떻고 하는 식이다.

내년 4월총선을 앞두고 오로지 정치적인 영역확대에만 관심이 쏠려 있다.

3백명 가까운 국회의원 어느 누구로 부터도 귀가 번쩍 뜨이는 신선한 충격을
받아보지 못했다.

또 그 많은 정치지망생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지만 "바로 이 사람이구나"하고
다시 눈을 씻고 볼만한 인물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물이 없어서일까.

그렇게는 생각되지 않는다.

우리 정치의 고질적인 지역주의 파벌주의 소속주의에 함몰되어 있어서일
게다.

아직도 정치보스에 소속되지 않고, 지역정서에 영합하지 않고, 학교의 연에
기대지 않고는 그들은 설 땅이 없다.

불행히도 이러한 폐해가 쉽게 고쳐질 것 같지는 않다.

흔히 역사에서 교훈을 배워야 한다고 정치인들은 너나없이 목청을 돋운다.

그러나 이 말은 속빈 수사일 뿐이다.

집단주의 정실주의 권위주의로 인해 정치 및 행정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환란이 초래됐는데도 벌써 다 잊어버렸다.

아직도 구태를 재연하고 있으니 말이다.

따라서 IMF는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는 복병으로 우리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다.

또 개혁을 해야 나라가 살고 제2의 환난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그토록
외쳤으면서도 15대 국회는 핵심적인 수많은 개혁입법을 모르쇠했다.

통과된 법도 많은 부분이 변질돼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태세다.

그저 국민들 뇌리에 남아있는 국회의원상은 후원회를 열어 돈이나 모으고,
당론이 정해지면 전위대역할을 하는 정도로 각인되어 있다.

국민들은 희망의 정치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특히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삶의 의욕을 북돋울 수 있는 정치를
간구하고 있다.

여기에는 몇가지 선결돼야할 전제조건이 있다.

첫째 정치의 진입장벽을 없애야 한다.

보스체제의 구조가 타파돼야 한다는 얘기다.

3김정치의 카르텔은 이젠 구시대의 유물로 돌려야 한다.

둘째는 망국적인 지역병을 고쳐야 한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하는 신3국의 망령이 총선을 앞두고 고개를 들고
있다.

국가장래를 파괴하는 암적인 요소다.

셋째는 책임정치를 구현하는 일이다.

유권자의 눈치를 살피고 이익단체의 압력에 굴복한다면 소신을 펴기가
어려울 것이다.

대의를 최상의 덕목으로 삼아야 한다.

넷째는 불신풍조를 일소하는 것이다.

상대당의 당론을 무조건 무시하고 상대의원의 인격을 깍아 내리는한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는 어려운 일이다.

국회의원은 한사람 한사람이 헌법기관이다.

그런 만큼 믿음이 있어야 한다.

원래 정치는 다투게 돼 있다.

여.야로 나눠진 건 역설적으로 말해 싸우라는 것이다.

정치적인 이해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방법이 정당해야 하고 목표가 타당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회오리 정치"나 하고 미사여구의 말을 즐긴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새시대의 신명나는 정치를 기대해 본다.

< youngbae@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