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입삼 회고록 '시장경제와 기업가 정신'] (81) '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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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장공개방지/벌칙조항 ]
주식공개촉진법은 "자본시장 육성에 관한 법률"이라는 명칭으로 순조롭게
제정됐다.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저항과 차질이 생겼다.
반대 의견은 놀랍게도 경제계에서 나왔다.
다른 사람도 아닌 경제인협회 회원인 제동산업 심상준 사장이 반대의 선봉에
섰다.
논지는 이렇다.
"기업규모나 준비관계로 중소기업은 공개하기 어렵다. 그런데 법인세
45%(비공개법인)를 25%(공개법인)로 대폭 낮추면 대기업만 혜택을 받게 된다.
이는 결국 대기업 특혜조치다"
무역협회와 상의에서도 이런 의견에 동조하는 세력이 적지 않았다.
이에 고무된 심상준 사장은 69년초 김용완 회장과 본인이 있는 자리에서
직선적으로 항의했다.
"주식공개법은 주식공개를 강요하는 사회주의 색채를 띤 것"이라고.
"또 이 법은 공개할 수 있는 몇몇 대기업에 특혜를 주는 법이 될 것입니다"
이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반대논리를 펴는 진의는 다른데 있었다.
공개자격이 있는데도 공개하기 싫은 기업인들이 하는 소리였다.
왜냐하면 주주가 늘면 기업을 운영할 때 투명성 및 공정성을 기해야 한다.
소위 "주머니 돈이 쌈짓돈인 식"의 흐리멍텅한 회사 경리는 용인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주가와 회사 신용을 유지하기 위해선 이익을 내 배당을
해야한다.
자칫 경영권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
그러니 속으로는 공개법인화를 원치 않으면서,반대이유를 위와 같이
꾸며댄 것으로 필자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경제인협회가 법을 통과시켰고 심지어 "종업원 지주제"까지 도입
했으니 자격요건을 갖춘 기업이 공개하지 않을 경우 여론과 종업원으로부터
무언의 압력까지 받게 된다.
얼굴을 붉히고 언성을 높이는 심상준 사장의 항의를 참을성있게 묵묵히 듣고
있던 김용완 회장은 조용히 말문을 연다.
"심 사장 반대 의견은 잘 알겠소.그런데 경방은 창립때부터 공개법인으로
출발했소. 경방 창립자 김성수 선생은 20년에 13도를 몸소 다니면서 주식
공모에 힘써 공개법인을 설립했소. 민족자본에 의한 민족기업, 한민족의 주식
참여로 널리 뿌리내린 기업이 아니고서는 선발 일본기업들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하신 것이오. 주식공개 -사회주의 운운은 아예
입밖에도 내지 마시오"
평소에 부드럽고 과묵한 김용완 회장께서 이때처럼 단호한 어법과 소신으로
말씀하신 것은 처음 봤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호사다마라 할까.
하루는 청와대 김용환 경제수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곧 만나자는 것이다.
경제수석실로 가니 큰폭의 줄친 지면에 기업인 명부가 적혀있다.
자세히 보니 낯익은 이름들이 많다.
"이것 좀 보시오"
"이것은 기업인 이름들이 아니오"
"그렇소-"
그리고 약간의 침묵이 흘렀다.
"글쎄 우리가 명분도 있고 시의에도 맞는 것이라 하여 주식공개법을
제정하지 않았소. 그런데 이 이름들을 자세히 보시오. 이자들은 주식공개를
빙자해 위장 공개한 것이오"
"위장공개-"라니.
"금시초문인데 위장공개가 무엇이오"
필자는 놀라 되물었다.
그러자 김 수석은 몇 회사의 공개분산된 주주명단을 보여 준다.
분산된 주주가 타인이 아니라 "사돈의 팔촌"식으로 친척들의 이름을 빌려
주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20% 법인세 혜택을 노려서 친척 이름을 빌려 위장공개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때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이것이 무슨 창피람"
사람의 선의를 이렇게 짓밟을 수 있을까.
다음 순간 백면서생이 제아무리 치밀하다 한들 책상 위에서 만든 계획이나
법은 현실에선 잘 맞지 않고 도용.악용될 소지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새삼
뼈저리게 느꼈다.
필자는 이 수치스런 경험을 두고두고 후배나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오고
있다.
경험이 뒷받침되지 않는 아이디어나 계획은 탁상공론에 불과하다고.
또 동기가 아무리 선한들 악용될 소지가 있고, 부작용도 따르게 마련이다.
이는 또 필자 자신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물론 그후 지체없이 "위장공개 방지책과 벌칙조항"을 법에 첨가했다.
IMF사태 이후, 한국의 기업지배구조 주식분산 분식결산 승계 투명성 등 많은
문제점들이 노출됐다.
그런데 이들 문제점은 우리가 주식공개촉진법 기초 당시 이미 색출, 고민한
것들이 아니었던가.
그후 30여년이 지났다.
그동안 무엇을 했단 말인가.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 전 전경련 상임부회장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7일자 ).
주식공개촉진법은 "자본시장 육성에 관한 법률"이라는 명칭으로 순조롭게
제정됐다.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저항과 차질이 생겼다.
반대 의견은 놀랍게도 경제계에서 나왔다.
다른 사람도 아닌 경제인협회 회원인 제동산업 심상준 사장이 반대의 선봉에
섰다.
논지는 이렇다.
"기업규모나 준비관계로 중소기업은 공개하기 어렵다. 그런데 법인세
45%(비공개법인)를 25%(공개법인)로 대폭 낮추면 대기업만 혜택을 받게 된다.
이는 결국 대기업 특혜조치다"
무역협회와 상의에서도 이런 의견에 동조하는 세력이 적지 않았다.
이에 고무된 심상준 사장은 69년초 김용완 회장과 본인이 있는 자리에서
직선적으로 항의했다.
"주식공개법은 주식공개를 강요하는 사회주의 색채를 띤 것"이라고.
"또 이 법은 공개할 수 있는 몇몇 대기업에 특혜를 주는 법이 될 것입니다"
이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반대논리를 펴는 진의는 다른데 있었다.
공개자격이 있는데도 공개하기 싫은 기업인들이 하는 소리였다.
왜냐하면 주주가 늘면 기업을 운영할 때 투명성 및 공정성을 기해야 한다.
소위 "주머니 돈이 쌈짓돈인 식"의 흐리멍텅한 회사 경리는 용인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주가와 회사 신용을 유지하기 위해선 이익을 내 배당을
해야한다.
자칫 경영권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
그러니 속으로는 공개법인화를 원치 않으면서,반대이유를 위와 같이
꾸며댄 것으로 필자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경제인협회가 법을 통과시켰고 심지어 "종업원 지주제"까지 도입
했으니 자격요건을 갖춘 기업이 공개하지 않을 경우 여론과 종업원으로부터
무언의 압력까지 받게 된다.
얼굴을 붉히고 언성을 높이는 심상준 사장의 항의를 참을성있게 묵묵히 듣고
있던 김용완 회장은 조용히 말문을 연다.
"심 사장 반대 의견은 잘 알겠소.그런데 경방은 창립때부터 공개법인으로
출발했소. 경방 창립자 김성수 선생은 20년에 13도를 몸소 다니면서 주식
공모에 힘써 공개법인을 설립했소. 민족자본에 의한 민족기업, 한민족의 주식
참여로 널리 뿌리내린 기업이 아니고서는 선발 일본기업들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하신 것이오. 주식공개 -사회주의 운운은 아예
입밖에도 내지 마시오"
평소에 부드럽고 과묵한 김용완 회장께서 이때처럼 단호한 어법과 소신으로
말씀하신 것은 처음 봤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호사다마라 할까.
하루는 청와대 김용환 경제수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곧 만나자는 것이다.
경제수석실로 가니 큰폭의 줄친 지면에 기업인 명부가 적혀있다.
자세히 보니 낯익은 이름들이 많다.
"이것 좀 보시오"
"이것은 기업인 이름들이 아니오"
"그렇소-"
그리고 약간의 침묵이 흘렀다.
"글쎄 우리가 명분도 있고 시의에도 맞는 것이라 하여 주식공개법을
제정하지 않았소. 그런데 이 이름들을 자세히 보시오. 이자들은 주식공개를
빙자해 위장 공개한 것이오"
"위장공개-"라니.
"금시초문인데 위장공개가 무엇이오"
필자는 놀라 되물었다.
그러자 김 수석은 몇 회사의 공개분산된 주주명단을 보여 준다.
분산된 주주가 타인이 아니라 "사돈의 팔촌"식으로 친척들의 이름을 빌려
주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20% 법인세 혜택을 노려서 친척 이름을 빌려 위장공개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때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이것이 무슨 창피람"
사람의 선의를 이렇게 짓밟을 수 있을까.
다음 순간 백면서생이 제아무리 치밀하다 한들 책상 위에서 만든 계획이나
법은 현실에선 잘 맞지 않고 도용.악용될 소지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새삼
뼈저리게 느꼈다.
필자는 이 수치스런 경험을 두고두고 후배나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오고
있다.
경험이 뒷받침되지 않는 아이디어나 계획은 탁상공론에 불과하다고.
또 동기가 아무리 선한들 악용될 소지가 있고, 부작용도 따르게 마련이다.
이는 또 필자 자신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물론 그후 지체없이 "위장공개 방지책과 벌칙조항"을 법에 첨가했다.
IMF사태 이후, 한국의 기업지배구조 주식분산 분식결산 승계 투명성 등 많은
문제점들이 노출됐다.
그런데 이들 문제점은 우리가 주식공개촉진법 기초 당시 이미 색출, 고민한
것들이 아니었던가.
그후 30여년이 지났다.
그동안 무엇을 했단 말인가.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 전 전경련 상임부회장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