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시간여행 (상)] '20세기 이끈 경제 경영학자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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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경제학사는 서구의 이론 체계를 한국적 현실에 의미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려는 고뇌의 과정이었다.
한국에서의 경제학 연구가 보편적인 타당성을 갖는 새로운 이론의 탐구보다
는 이론의 현실적합성을 고민하는데 더 많은 정력을 기울인 것도 개발도상국
학자가 짊어진 숙명 때문이었다.
한국경제신문이 지난 82년부터 선정해온 다산경제학상 수상자들을 떠올려
봄으로써 지난 1백년 한국의 경제학이 남긴 발자취를 더듬어 본다.
<> 조기준 =조 교수는 학자로서의 길에만 정진한 경제학계의 대원로였다.
그는 실학에서 단초를 찾을 수 있는 자생적 근대화의 열망이 과학기술과
조직적인 개혁의지가 부족해 좌절된 것을 매우 애석해했다.
조 교수는 20년대 서민층의 기업활동을 해방 후 한국자본주의 발전의
기층으로 파악했다.
"한국자본주의성립사론"과 "한국기업가사연구" 등 그의 대표적인 저작은
한국 현대경제사 연구에 바탕이 됐다.
<> 조순 =국내에서 케인스 이론이 본격적으로 조명받은 것은 조 교수의
학문적 여적과 깊이 관련돼 있다.
"중장기 경제개발전략에 관한 연구" "금융발전의 조건과 한국금융의 과제"
"J M 케인스" 등 조 교수의 저작은 경제이론은 물론 역사와 철학에 걸쳐
균형감각을 유지한 수준 높은 논문으로 평가된다.
그가 집필한 경제학 원론은 아직도 많은 대학생들의 필독서가 되고 있다.
조 교수는 이론의 타당성만 과신한 나머지 현실적합성에 대한 검토를
소홀히하는 경향을 경계했고 역사와 사회제도에 대한 이해로 경제학이
보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경제학사나 고전에 대한 번역에도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 김준보 =한국 경제학의 초창기 시절 학문적 기틀이 잡히는 데 기여한
인물로 김 교수가 꼽힌다.
그는 "농업경제학서설" "경제통계론" "한국자본주의사연구"
"산업연관분석론" "한국경제와 임금구조" 등의 저작에서 보듯 다채로운
학문적 편력을 자랑한 학자였다.
특히 이론과 역사, 정책을 포괄하는 삼위일체형의 경제모형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고 후생을 외면한 형식성장에 매달릴 때 "인간 없는 경제학"으로의
전락이 불가피하다고 경계했다.
<> 고승제 =고 교수는 한국의 현실에 서구 근대경제이론을 도입하는 데
앞장섰다.
"한국금융사연구" "한국경제론" "한국근대화론" "한국촌락사연구" 등의
저작은 그의 다양한 관심사를 보여준다.
특히 통계의 매너리즘에서 탈피해 인간성 넘치는 합리적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은 후학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 김옥근 =김 교수는 평생을 통해 경제사를 집중 연구한 학자였다.
그는 치밀하게 고문헌을 고증해 한국 경제사학계의 실증적 연구풍토를
선도했다.
김 교수의 고문헌 고증 능력은 일반 사학자들의 수준을 뛰어넘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한국 경제학의 정치경제학적 성격이 해방 이후 소멸된 것을 아쉬워했고
따라서 역사적 구조적 이해를 경제학에 수용하기 위해 노력했다.
<> 임원택 =학계가 케인스 이론 중심의 신고전파 경제학으로 편중된
상황에서 임 교수는 영국 고전파와 오스트리아학파 로잔학파 등을 광범위하게
연구함으로써 한국 경제학계가 이론적으로 풍성해질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다.
또한 그의 저서 "제2자본론"은 자본주의의 운동법칙을 현대적 상황에서
조명한 새로운 시도였다.
임 교수는 독일과 일본 등 "제3의 경제학"을 받아들일 것을 강조했고 이를
통해 국내 경제학계가 구미 일변도의 의존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여겼다.
<> 이기준 =이 교수는 한국 경제학계에 생소한 경제학 도입사를 연구한
학자다.
"자료 한국경제학발달사" "교육한국경제학발달사" "한말서구경제학도입사
연구" 등 3개의 저작을 통해 구한말 이래 한국 사회에 서구 경제학이
도입되는 과정을 실증적으로 고찰했다.
이 교수는 또한 산업연관론의 관점에서 한국 경제의 산업구조를 해명하는
다수의 연구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근대화 과정에서 한국 경제학은 실력 배양과 실업 발달을 주창하면서
생성됐지만 한.일 합병으로 맥이 끊겼다고 파악했다.
한국의 특수성과 경제학 일반론과의 조화를 한국 경제학이 풀어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 김윤환 =한국에서 노동경제학으로 일관한 학자는 드물다.
그런 의미에서 40여년에 걸쳐 한국의 노동문제를 탐구한 김 교수에게 한국
노동경제학이 정립된 공을 돌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김 교수는 "한국노동운동사" "한국의 노동문제 연구" 등을 통해 한국
자본주의의 전개과정을 노동 측면에서 고찰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합리성과 도덕주의를 바탕으로 실학을 비롯한 한국의 경제사상을
수용해야 한국 경제학이 제대로 설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또 복지문제를 다룰 공공경제학의 활성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 권병탁 ="한국경제사특수연구"와 "이조 말기의 농촌직물수공업연구" 등을
저술했으며 고려말에서 조선말기까지의 생산양식을 실증적으로 연구해 초기
자본주의의 발전형태를 구명했다.
이 연구는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을 주체적인 관점에서 파악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일하고자 하는 의욕을 고취하고 자신의 재능과 기술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한국 경제의 핵심과제라고 지적했다.
<> 박광순 =박 교수는 30여년동안 한국의 어업경제사 연구로 일관한 학문적
태도를 보여줬다.
그는 끊임없이 한국 어업공동체의 육성과 지역경제 발전을 위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특히 "한국어업경제사 연구"라는 저서를 통해 어업공동체의 존립 조건과
한국어업공동체의 전개 형태를 구명함으로써 한국어업경제사의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인플레와 실업 외부경제 등에도 관심을 가졌고 근로자의 경영참여를
시급한 과제로 제기한 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빵과 인간가치의 동시 추구"라는 경제학의 실천성을 강조했고 계량적
모델에 치우친 국내 연구풍토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 변형윤 =현재 제2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공동대표이기도 한 변 교수는
한국 경제학계에 계량경제학을 도입한 선구자였다.
특히 주저인 "한국경제연구""현대경제학연구""한국경제의 전개과정"을
통해 이론경제학의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그는 선진국의 시각이 녹아들어 있는 주류경제학을 맹신하는 풍토에서
벗어나 전통과 현실에 부합된 새 모델을 찾아야 한다고 주창했다.
그는 또한 응용지향적이고 정책지향적인 한국 경제학계의 편중성을 우려하고
순수이론 내지 기초이론을 아우르는 균형 있는 경제학 연구를 촉구했다.
변 교수는 한국 경제학계에서 분배이론과 경제사 사상사 등이 소외돼 있다고
보고 이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 주종환 =주 교수는 "농업경제학연구" "한국자본주의사론" 등을 통해 한국
농업경제학의 이론적 체계를 마련했다.
주 교수는 또한 한국자본주의 발전과정을 이론적으로 고찰한 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각종 경제제도와 관행이 민주화돼야 한다고 역설했으며 민간이 정부의
독주를 견제할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비생산적 경제분야의 지나친 팽창이나 소득불균형의 심화, 그리고
대외의존성이 지나치게 확대되는 한국 경제의 문제점들이 인간다운 삶을 위한
수단으로 보아야 할 경제를 목적으로까지 받든 데서 비롯됐다고 파악했다.
경제정책이 성장보다는 사회복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인간적인 가치를 우선한 그의 사상 때문이었다.
<> 박우희 ="한국의 기술발전" "기술흡수 경제학" 등의 저서로 잘 알려진
박 교수는 기술철학과 경제철학을 통합해 한국의 기술경제학을 정립한 것으로
평가된다.
영국 옥스퍼드대 객원교수와 일본 도쿄대 연구원을 거치면서 일어와 영어로
학술활동을 전개해 한국의 학문수준을 해외에 알린 공로도 인정받는다.
박 교수는 기술의 발달이 후기산업사회를 크게 변혁시킬 원동력이라고
파악했다.
또 물질문명의 병폐는 인간 중심의 정신적 사고를 통해서만 보완할 수
있다고 믿은 학자이기도 했다.
물질적 기능이 인간적 기능으로 옮겨가는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반근대적
요인으로 버림받았던 동아시아적 특성들이 기술경제를 창조하는 원동력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게 그의 확고한 믿음이었다.
<> 김병태 =김 교수는 한국 농업경제학에서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농업경제 연구에 일생을 바쳐 "한국농업경제론" 등 주요 저서를
남겼다.
한국 농업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개선방법을 제시한 것이 그의
학문적 업적이라 할 수 있다.
김 교수는 농산물 현지가공체제를 시급히 구축하고 유통구조 개선과
지역산물의 특화를 통해 농산물 개방시대에 대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소농끼리 노동과 자본을 함께 출자해 농업을 기계화하고 협업경영을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적 농촌현실을 감안해 한국 농업의 발전전략을 탐구하는 것이 그의
학문적 소명이었다.
<> 김영호 =김 교수는 한국 경제의 현실인식과 기술분업 전략을 꾸준히
연구해온 업적으로 높이 평가된다.
그는 기술과 무역만이 국가가 추구해야 할 길이라고 오래전부터 주장해
왔다.
"동아시아공업화와 세계자본주의" "실학의 개신유학적 구조" 등이 김 교수의
대표적인 저서다.
특히 "정다산의 과학 기술사상" "다산실학의 사회경제적 배경" 등의
저술활동을 통해 다산 정약용의 실학사상을 현대적 의미로 고찰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는 현재 국제 투기자본의 횡포에 맞선 국제적 시민연대인 "대구라우드"를
주도하고 있다.
<> 전철환 =전 교수는 한국의 통화금융정책 수립과 금융산업의 체질개선 및
방향정립에 크게 기여한 학자였다.
"한국경제론(86)"과 "사회정의와 경제의 이론(80)" 등이 주요 저작으로
꼽힌다.
전 교수는 한국의 공업구조를 농업과 공업의 "부문별" 2중구조와 전통수공업
과 근대공업이라는 공업내"기술적"2중구조로 파악해 한국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에 주목하기도 했다.
한국의 자본주의와 경제논리가 부는 축적해 왔지만 경제정의는 무시해
왔다는 비판적 시각을 그의 사회정의론은 담고 있다.
그는 설명력과 예측력, 대응력까지 갖춘 새로운 이론틀을 추구하는 것보다
당면과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경제학이 변증법적인 발전을 할 수 있다고
믿은 학자이기도 했다.
현재는 한국은행 총재로서 한국의 통화금융정책을 책임지고 있다.
<> 김일곤 =기존 경제발전 이론들이 소흘히 다뤘던 문화적 변수를 경제학
연구에 포함시킴으로써 경제발전 이론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웠던 게
김 교수의 업적이다.
김 교수는 "동아시아의 경제발전과 유교문화" "유교문화권의 질서와 경제"
등을 통해 특히 동아시아에서 유교문화가 경제발전에 기여한 몫이 컸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서구화의 논리를 극복하고 상조와 공생의 문화를 바탕으로 한 경제발전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기본적인 사상이었다.
그의 결론은 21세기에는 동아시아가 문화적 전통을 기반으로 세계사를
주도하는 지위에 선다는 것이었다.
<> 윤석범 =윤 교수는 오래 동안 빈곤문제에 천착해 왔다.
"한국의 빈곤"에서 윤 교수는 삼국시대부터 일제시대에까지 빈곤의 원인과
대책을 고찰하고 그 성격과 문화적 양상을 설명했다.
나아가 법적 행정적 재정적 차원에서의 대비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구체적인 현장조사를 통해 개인은 물론 나라의 부와 소득이 외생적인
요인에 따라 결정됨을 보임으로써 정부정책의 중요성을 상기시켰다.
그는 사회후생정책과 인간자본정책을 강화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윤 교수는 계량경제학을 한국적 현실에 접목시킨 선각자이기도 하다.
<> 김종현 =김 교수는 근대자본주의 성립과정이라는 주제에 일관된 학문적
관심을 기울였다.
영국의 산업혁명을 중심으로 구미제국과 일본의 공업화를 비교연구한 뒤
발표한 "공업화와 기업가 활동-비교사적 연구(1992)"는 그의 대표적인 저작중
하나다.
김 교수는 특히 공업화 과정에서 기업가의 역할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경제성장 요소중 주류 경제학에서 간과해 왔던 "기업가정신
(entrepreneurship)"을 재조명했던 것이다.
후진국의 공업화와 해방후 한국공업화 과정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경제정책
수립에 중요한 이론적 바탕이 되기도 했다.
<> 정병휴 =정 교수는 한국 산업의 독과점 구조와 규제방안에 대한 연구로
국내 공정거래법의 제정과 정착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한국산업의 독과점 구조와 그 규제방안에 관한 연구(1979)" "한국의
재벌부문과 경제력 집중(1992)" 등이 그의 대표적인 저서다.
정 교수는 경제부문의 실상을 경제력 집중, 소유구조, 경영체제라는 3가지
측면에서 분석해 재벌정책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다.
정교수는 지난 60년 서울대 상과대학에서 한국에선 처음으로 미시경제학
강의를 시작한 국내 미시경제학계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 박민하 기자 hahaha@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0일자 ).
받아들이려는 고뇌의 과정이었다.
한국에서의 경제학 연구가 보편적인 타당성을 갖는 새로운 이론의 탐구보다
는 이론의 현실적합성을 고민하는데 더 많은 정력을 기울인 것도 개발도상국
학자가 짊어진 숙명 때문이었다.
한국경제신문이 지난 82년부터 선정해온 다산경제학상 수상자들을 떠올려
봄으로써 지난 1백년 한국의 경제학이 남긴 발자취를 더듬어 본다.
<> 조기준 =조 교수는 학자로서의 길에만 정진한 경제학계의 대원로였다.
그는 실학에서 단초를 찾을 수 있는 자생적 근대화의 열망이 과학기술과
조직적인 개혁의지가 부족해 좌절된 것을 매우 애석해했다.
조 교수는 20년대 서민층의 기업활동을 해방 후 한국자본주의 발전의
기층으로 파악했다.
"한국자본주의성립사론"과 "한국기업가사연구" 등 그의 대표적인 저작은
한국 현대경제사 연구에 바탕이 됐다.
<> 조순 =국내에서 케인스 이론이 본격적으로 조명받은 것은 조 교수의
학문적 여적과 깊이 관련돼 있다.
"중장기 경제개발전략에 관한 연구" "금융발전의 조건과 한국금융의 과제"
"J M 케인스" 등 조 교수의 저작은 경제이론은 물론 역사와 철학에 걸쳐
균형감각을 유지한 수준 높은 논문으로 평가된다.
그가 집필한 경제학 원론은 아직도 많은 대학생들의 필독서가 되고 있다.
조 교수는 이론의 타당성만 과신한 나머지 현실적합성에 대한 검토를
소홀히하는 경향을 경계했고 역사와 사회제도에 대한 이해로 경제학이
보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경제학사나 고전에 대한 번역에도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 김준보 =한국 경제학의 초창기 시절 학문적 기틀이 잡히는 데 기여한
인물로 김 교수가 꼽힌다.
그는 "농업경제학서설" "경제통계론" "한국자본주의사연구"
"산업연관분석론" "한국경제와 임금구조" 등의 저작에서 보듯 다채로운
학문적 편력을 자랑한 학자였다.
특히 이론과 역사, 정책을 포괄하는 삼위일체형의 경제모형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고 후생을 외면한 형식성장에 매달릴 때 "인간 없는 경제학"으로의
전락이 불가피하다고 경계했다.
<> 고승제 =고 교수는 한국의 현실에 서구 근대경제이론을 도입하는 데
앞장섰다.
"한국금융사연구" "한국경제론" "한국근대화론" "한국촌락사연구" 등의
저작은 그의 다양한 관심사를 보여준다.
특히 통계의 매너리즘에서 탈피해 인간성 넘치는 합리적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은 후학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 김옥근 =김 교수는 평생을 통해 경제사를 집중 연구한 학자였다.
그는 치밀하게 고문헌을 고증해 한국 경제사학계의 실증적 연구풍토를
선도했다.
김 교수의 고문헌 고증 능력은 일반 사학자들의 수준을 뛰어넘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한국 경제학의 정치경제학적 성격이 해방 이후 소멸된 것을 아쉬워했고
따라서 역사적 구조적 이해를 경제학에 수용하기 위해 노력했다.
<> 임원택 =학계가 케인스 이론 중심의 신고전파 경제학으로 편중된
상황에서 임 교수는 영국 고전파와 오스트리아학파 로잔학파 등을 광범위하게
연구함으로써 한국 경제학계가 이론적으로 풍성해질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다.
또한 그의 저서 "제2자본론"은 자본주의의 운동법칙을 현대적 상황에서
조명한 새로운 시도였다.
임 교수는 독일과 일본 등 "제3의 경제학"을 받아들일 것을 강조했고 이를
통해 국내 경제학계가 구미 일변도의 의존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여겼다.
<> 이기준 =이 교수는 한국 경제학계에 생소한 경제학 도입사를 연구한
학자다.
"자료 한국경제학발달사" "교육한국경제학발달사" "한말서구경제학도입사
연구" 등 3개의 저작을 통해 구한말 이래 한국 사회에 서구 경제학이
도입되는 과정을 실증적으로 고찰했다.
이 교수는 또한 산업연관론의 관점에서 한국 경제의 산업구조를 해명하는
다수의 연구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근대화 과정에서 한국 경제학은 실력 배양과 실업 발달을 주창하면서
생성됐지만 한.일 합병으로 맥이 끊겼다고 파악했다.
한국의 특수성과 경제학 일반론과의 조화를 한국 경제학이 풀어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 김윤환 =한국에서 노동경제학으로 일관한 학자는 드물다.
그런 의미에서 40여년에 걸쳐 한국의 노동문제를 탐구한 김 교수에게 한국
노동경제학이 정립된 공을 돌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김 교수는 "한국노동운동사" "한국의 노동문제 연구" 등을 통해 한국
자본주의의 전개과정을 노동 측면에서 고찰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합리성과 도덕주의를 바탕으로 실학을 비롯한 한국의 경제사상을
수용해야 한국 경제학이 제대로 설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또 복지문제를 다룰 공공경제학의 활성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 권병탁 ="한국경제사특수연구"와 "이조 말기의 농촌직물수공업연구" 등을
저술했으며 고려말에서 조선말기까지의 생산양식을 실증적으로 연구해 초기
자본주의의 발전형태를 구명했다.
이 연구는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을 주체적인 관점에서 파악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일하고자 하는 의욕을 고취하고 자신의 재능과 기술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한국 경제의 핵심과제라고 지적했다.
<> 박광순 =박 교수는 30여년동안 한국의 어업경제사 연구로 일관한 학문적
태도를 보여줬다.
그는 끊임없이 한국 어업공동체의 육성과 지역경제 발전을 위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특히 "한국어업경제사 연구"라는 저서를 통해 어업공동체의 존립 조건과
한국어업공동체의 전개 형태를 구명함으로써 한국어업경제사의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인플레와 실업 외부경제 등에도 관심을 가졌고 근로자의 경영참여를
시급한 과제로 제기한 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빵과 인간가치의 동시 추구"라는 경제학의 실천성을 강조했고 계량적
모델에 치우친 국내 연구풍토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 변형윤 =현재 제2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공동대표이기도 한 변 교수는
한국 경제학계에 계량경제학을 도입한 선구자였다.
특히 주저인 "한국경제연구""현대경제학연구""한국경제의 전개과정"을
통해 이론경제학의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그는 선진국의 시각이 녹아들어 있는 주류경제학을 맹신하는 풍토에서
벗어나 전통과 현실에 부합된 새 모델을 찾아야 한다고 주창했다.
그는 또한 응용지향적이고 정책지향적인 한국 경제학계의 편중성을 우려하고
순수이론 내지 기초이론을 아우르는 균형 있는 경제학 연구를 촉구했다.
변 교수는 한국 경제학계에서 분배이론과 경제사 사상사 등이 소외돼 있다고
보고 이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 주종환 =주 교수는 "농업경제학연구" "한국자본주의사론" 등을 통해 한국
농업경제학의 이론적 체계를 마련했다.
주 교수는 또한 한국자본주의 발전과정을 이론적으로 고찰한 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각종 경제제도와 관행이 민주화돼야 한다고 역설했으며 민간이 정부의
독주를 견제할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비생산적 경제분야의 지나친 팽창이나 소득불균형의 심화, 그리고
대외의존성이 지나치게 확대되는 한국 경제의 문제점들이 인간다운 삶을 위한
수단으로 보아야 할 경제를 목적으로까지 받든 데서 비롯됐다고 파악했다.
경제정책이 성장보다는 사회복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인간적인 가치를 우선한 그의 사상 때문이었다.
<> 박우희 ="한국의 기술발전" "기술흡수 경제학" 등의 저서로 잘 알려진
박 교수는 기술철학과 경제철학을 통합해 한국의 기술경제학을 정립한 것으로
평가된다.
영국 옥스퍼드대 객원교수와 일본 도쿄대 연구원을 거치면서 일어와 영어로
학술활동을 전개해 한국의 학문수준을 해외에 알린 공로도 인정받는다.
박 교수는 기술의 발달이 후기산업사회를 크게 변혁시킬 원동력이라고
파악했다.
또 물질문명의 병폐는 인간 중심의 정신적 사고를 통해서만 보완할 수
있다고 믿은 학자이기도 했다.
물질적 기능이 인간적 기능으로 옮겨가는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반근대적
요인으로 버림받았던 동아시아적 특성들이 기술경제를 창조하는 원동력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게 그의 확고한 믿음이었다.
<> 김병태 =김 교수는 한국 농업경제학에서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농업경제 연구에 일생을 바쳐 "한국농업경제론" 등 주요 저서를
남겼다.
한국 농업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개선방법을 제시한 것이 그의
학문적 업적이라 할 수 있다.
김 교수는 농산물 현지가공체제를 시급히 구축하고 유통구조 개선과
지역산물의 특화를 통해 농산물 개방시대에 대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소농끼리 노동과 자본을 함께 출자해 농업을 기계화하고 협업경영을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적 농촌현실을 감안해 한국 농업의 발전전략을 탐구하는 것이 그의
학문적 소명이었다.
<> 김영호 =김 교수는 한국 경제의 현실인식과 기술분업 전략을 꾸준히
연구해온 업적으로 높이 평가된다.
그는 기술과 무역만이 국가가 추구해야 할 길이라고 오래전부터 주장해
왔다.
"동아시아공업화와 세계자본주의" "실학의 개신유학적 구조" 등이 김 교수의
대표적인 저서다.
특히 "정다산의 과학 기술사상" "다산실학의 사회경제적 배경" 등의
저술활동을 통해 다산 정약용의 실학사상을 현대적 의미로 고찰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는 현재 국제 투기자본의 횡포에 맞선 국제적 시민연대인 "대구라우드"를
주도하고 있다.
<> 전철환 =전 교수는 한국의 통화금융정책 수립과 금융산업의 체질개선 및
방향정립에 크게 기여한 학자였다.
"한국경제론(86)"과 "사회정의와 경제의 이론(80)" 등이 주요 저작으로
꼽힌다.
전 교수는 한국의 공업구조를 농업과 공업의 "부문별" 2중구조와 전통수공업
과 근대공업이라는 공업내"기술적"2중구조로 파악해 한국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에 주목하기도 했다.
한국의 자본주의와 경제논리가 부는 축적해 왔지만 경제정의는 무시해
왔다는 비판적 시각을 그의 사회정의론은 담고 있다.
그는 설명력과 예측력, 대응력까지 갖춘 새로운 이론틀을 추구하는 것보다
당면과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경제학이 변증법적인 발전을 할 수 있다고
믿은 학자이기도 했다.
현재는 한국은행 총재로서 한국의 통화금융정책을 책임지고 있다.
<> 김일곤 =기존 경제발전 이론들이 소흘히 다뤘던 문화적 변수를 경제학
연구에 포함시킴으로써 경제발전 이론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웠던 게
김 교수의 업적이다.
김 교수는 "동아시아의 경제발전과 유교문화" "유교문화권의 질서와 경제"
등을 통해 특히 동아시아에서 유교문화가 경제발전에 기여한 몫이 컸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서구화의 논리를 극복하고 상조와 공생의 문화를 바탕으로 한 경제발전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기본적인 사상이었다.
그의 결론은 21세기에는 동아시아가 문화적 전통을 기반으로 세계사를
주도하는 지위에 선다는 것이었다.
<> 윤석범 =윤 교수는 오래 동안 빈곤문제에 천착해 왔다.
"한국의 빈곤"에서 윤 교수는 삼국시대부터 일제시대에까지 빈곤의 원인과
대책을 고찰하고 그 성격과 문화적 양상을 설명했다.
나아가 법적 행정적 재정적 차원에서의 대비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구체적인 현장조사를 통해 개인은 물론 나라의 부와 소득이 외생적인
요인에 따라 결정됨을 보임으로써 정부정책의 중요성을 상기시켰다.
그는 사회후생정책과 인간자본정책을 강화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윤 교수는 계량경제학을 한국적 현실에 접목시킨 선각자이기도 하다.
<> 김종현 =김 교수는 근대자본주의 성립과정이라는 주제에 일관된 학문적
관심을 기울였다.
영국의 산업혁명을 중심으로 구미제국과 일본의 공업화를 비교연구한 뒤
발표한 "공업화와 기업가 활동-비교사적 연구(1992)"는 그의 대표적인 저작중
하나다.
김 교수는 특히 공업화 과정에서 기업가의 역할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경제성장 요소중 주류 경제학에서 간과해 왔던 "기업가정신
(entrepreneurship)"을 재조명했던 것이다.
후진국의 공업화와 해방후 한국공업화 과정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경제정책
수립에 중요한 이론적 바탕이 되기도 했다.
<> 정병휴 =정 교수는 한국 산업의 독과점 구조와 규제방안에 대한 연구로
국내 공정거래법의 제정과 정착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한국산업의 독과점 구조와 그 규제방안에 관한 연구(1979)" "한국의
재벌부문과 경제력 집중(1992)" 등이 그의 대표적인 저서다.
정 교수는 경제부문의 실상을 경제력 집중, 소유구조, 경영체제라는 3가지
측면에서 분석해 재벌정책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다.
정교수는 지난 60년 서울대 상과대학에서 한국에선 처음으로 미시경제학
강의를 시작한 국내 미시경제학계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 박민하 기자 hahaha@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