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 중심가인 라르고 도 세나도에는 유럽풍의 카페가 많다.

영어 포루투갈어 중국어가 뒤섞인 간판은 이곳이 포루투갈 식민지라는
사실을 확인해 준다.

중국으로의 반환을 눈앞에 둔 17일 오후 이 곳으로 들어가던 시민 진(김)
씨에게 중국 반환 소감을 물었다.

그는 "특별히 변할게 없어요"라면서 "마카오인들은 조용한데 외부 사람들이
더 극성"이라고 대답한다.

홍콩에서 중국의 일국양제(하나의 국가, 두개 체제) 정책을 확인한 마카오인
들에게는 크게 기대하거나 불안해할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마카오 반환은 진씨의 말이 나타내주듯 홍콩반환에 비해서는 경제적
파급영향이 떨어진다.

세계 언론기관들의 관심도 홍콩에는 비할 바가 못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반환은 중국이 서세동점(서구세력의 동양 진출)의
굴욕적 역사를 완전히 청산했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포루투갈이 마카오를 손에 넣은 것은 지난 1557년이었다.

당시 포루투갈 상인들이 해적소탕 대가로 명황제로부터 이 지역을 조차했다.

중국은 지난 97년 7월 홍콩을 되찾은데 이어 이번에 마카오를 "조국의 품"
에 넣음으로써 4백42년만에 식민지 역사를 끝내게 됐다.

이는 특히 21세기 슈퍼파워로 등장하려는 중국에 커다란 자부심을 주기에
충분하다.

마지막 식민지 마카오를 인수한 중국은 국내 통일 작업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중국 각 언론들은 마카오 반환을 전하면서 "이제는 대만이다"라고 일제히
쓰고 있다.

전직 외교부 관리인 왕바오충(왕보중)씨는 "대만 통일은 중국 국내 문제"
라며 "중국과 대만이 머리를 맞대면 중국통일은 시간 문제"라고 말했다.

장쩌민(강택민) 국가주석이 주관하는 대만공작판공실은 곧 "새 천년 대만
통일정책" 회의를 열어 대만통일에 대한 청사진을 마련, 발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이제는 대만통일에 최대의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향후 마카오 통치 정책으로 <>일국양제 <>마카오인에 의한 통치
<>고도자치 <>기존체제 50년간 불변 등 4가지 기본원칙을 설정했다.

외교와 국방을 제외하고는 마카오 행정청이 마카오를 자주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홍콩 통치방법과 별로 다르지 않다.

입법 사법 행정 등 모든 분야에서 대륙의의 입김을 최소화하겠다는 구상
이다.

마카오인들은 이같은 중국의 정책을 그대로 믿고 있는 분위기다.

중국의 홍콩 정책 사례가 큰 힘이 됐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생활이나 생업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반환이 이뤄진 후의 치안문제에 대해서는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중국 당국과 마카오 흑사회(지하 폭력조직)간에 충돌이 생길 경우 상당한
혼란이 올 수도 있다는 우려다.

세계적으로 악명높은 삼합회(트라이어드)의 본거지가 마카오다.

마카오 주민들의 생활에 깊숙히 뿌리내린 이들을 완전 소탕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양측 대립 때문에 사회가 불안해지고 관광객들이 줄어든다면 마카오인들이
중국을 멀리하려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최근 수년동안 마이너스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마카오 경제를 어떻게
일으킬지도 중국으로서는 고민이다.

중국은 마카오의 기존 경제.산업 체제를 유지하면서 반환에 따른 중국
경제와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중국은 특히 마카오를 주하이(주해) 시아먼(하문) 선전(심천) 등 남부
경제특구를 잇는 주장삼각지 개발의 기폭제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그러나 홍콩의 경제전문가들 중에는 마카오경제가 중국의 생각처럼 빠른
시일내에 활력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마카오의 매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다.

개혁개방 초기였다면 자유경제체제 마카오가 중국 투자의 창구로 활용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서방투자가들이 마카오를 외면하고 직접 중국대륙으로 달려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어쨌든 마카오는 중국이 21세기의 수퍼파워로 등장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또 한번의 무대가 될 것이다.

< 마카오=한우덕 특파원 woodyhan@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