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커뮤니케이션 한달째 상한가 행진..공모가보다 13배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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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요? 안하는게 아니라 못하고 있는 겁니다. 일할 시간도 모자라는데
애인 만날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인터넷 서비스업체인 다음커뮤니케이션 이재웅(31) 사장.
그는 겨우 한달만에 무려 1천8백억원대의 재산을 보유한 거부로 떠올랐다.
다음의 주식이 지난 11월11일 코스닥시장에서 처음 거래된 날부터 13일
까지 한달째(거래일 기준 23일) 하루도 빼지 않고 연속 상한가를 기록한 것.
공모가 1만원(액면가 5백원)이 13만2천5백원으로 뛰었다.
다음의 자본금은 30억원.
이재웅 사장은 22.6%의 지분을 갖고 있다.
인터넷 업계의 정상에 올라섰으나 그 정상을 지켜 나가기 위해 밤잠을
잊고 새로운 구상을 짜내야 하는 이 사장의 눈은 붉게 충혈돼 있다.
인터넷 업계의 많은 사람들은 올해 인터넷이 낳은 최고의 스타로 이
사장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국내 인터넷 비즈니스의 기념비적인 사건들을 잇따라 만들어 내면서
새로운 지평을 개척해 왔다.
인터넷업계의 정상은 그 반대급부이기도 하다.
연일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다음의 주가에 대해 이 사장은 "인터넷
사업에 재투자해 국내 최고의 인터넷업체가 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고 말한다.
지난 7일 다음(www.daum.net)은 인터넷서비스업체로는 처음으로 회원수
5백만명을 돌파했다.
무료 E메일을 기반으로 포털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이같은 회원을 확보했다.
지난해말 1백만명에서 1년도 안돼 5배로 늘어난 것이다.
국내 인터넷사용자가 6백만명 수준임을 감안하면 네티즌 6명 가운데
5명은 "다음" 회원인 셈이다.
이 사장의 이같은 성공을 두고 일부에서는 올해 폭발적으로 불어닥친
인터넷 붐이 만들어낸 행운아로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터넷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데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중요한
기준은 최고경영자의 능력과 경영관이다.
특히 국내 인터넷산업을 외국계 업체가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음의
급부상은 단순한 "붐"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 사장을 잘 아는 사람들은 또 지난 95년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창업한 이래
기울인 노력과 이 사장의 합리적인 사고, 과감한 결단력에 점수를 준다.
이 사장은 연세대 전산학과를 나와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평범한 과학자였다.
성격도 내성적인데다 장래 희망으로 교수를 꿈꾸고 있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공부를 그만두고 귀국을 서두른 것은 당시 급부상하고
있던 월드와이드웹(WWW)을 접하면서부터였다.
월드와이드웹이 미국 등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되면서 인터넷산업이 부상
하는 것에 자극받아 여기서 기회를 잡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곧바로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설립했다.
처음에는 어느 특정제품으로 승부를 내겠다기 보다는 인터넷분야에서
재미있고 보람된 일을 해보자고 했다.
초기에는 고생을 많이 했다.
그룹웨어 등 인터넷솔루션, 콘텐츠 등 벌이는 사업마다 기술력은 인정
받았지만 수익은 신통치 않아 실패를 거듭했다.
고민끝에 새로 찾아낸 사업아이템이 미국 "핫메일" 서비스에서 힌트를
얻은 무료 E메일서비스.
"무료 E메일의 성공여부가 미국에서조차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과감히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인터넷은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연결해 주는 강력한
도구가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장의 확신은 그대로 들어 맞았다.
97년 5월부터 ''한메일넷''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서비스는 7개월여만에
10만명의 가입자를 유치했고 98년에는 1백만여명, 드디어 올해엔 5백만명을
돌파하는 등 폭발적인 성장세를 달렸다.
이 사장은 5백만명의 회원과 코스닥에서 끌어모은 자금을 바탕으로 내년
에는 야후를 제치고 다음을 최고의 포털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각오다.
"회원확보도 중요하지만 고객과의 관계유지가 더 중요합니다. 고객서비스
를 향상시키고 마케팅을 강화하는데 집중적으로 투자하겠습니다"
이 사장은 내년에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지에서 최고의 기술로 평가받은
인터넷메일 솔루션을 가지고 해외시장에도 적극 진출할 계획이다.
인터넷은 속성상 글로벌화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럴 바에는 적극적으로
해외에 진출해 기술력도 높이고 세계기업으로서의 도약도 노리겠다고 이
사장은 자신있게 말했다.
< 송태형 기자 toughlb@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4일자 ).
애인 만날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인터넷 서비스업체인 다음커뮤니케이션 이재웅(31) 사장.
그는 겨우 한달만에 무려 1천8백억원대의 재산을 보유한 거부로 떠올랐다.
다음의 주식이 지난 11월11일 코스닥시장에서 처음 거래된 날부터 13일
까지 한달째(거래일 기준 23일) 하루도 빼지 않고 연속 상한가를 기록한 것.
공모가 1만원(액면가 5백원)이 13만2천5백원으로 뛰었다.
다음의 자본금은 30억원.
이재웅 사장은 22.6%의 지분을 갖고 있다.
인터넷 업계의 정상에 올라섰으나 그 정상을 지켜 나가기 위해 밤잠을
잊고 새로운 구상을 짜내야 하는 이 사장의 눈은 붉게 충혈돼 있다.
인터넷 업계의 많은 사람들은 올해 인터넷이 낳은 최고의 스타로 이
사장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국내 인터넷 비즈니스의 기념비적인 사건들을 잇따라 만들어 내면서
새로운 지평을 개척해 왔다.
인터넷업계의 정상은 그 반대급부이기도 하다.
연일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다음의 주가에 대해 이 사장은 "인터넷
사업에 재투자해 국내 최고의 인터넷업체가 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고 말한다.
지난 7일 다음(www.daum.net)은 인터넷서비스업체로는 처음으로 회원수
5백만명을 돌파했다.
무료 E메일을 기반으로 포털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이같은 회원을 확보했다.
지난해말 1백만명에서 1년도 안돼 5배로 늘어난 것이다.
국내 인터넷사용자가 6백만명 수준임을 감안하면 네티즌 6명 가운데
5명은 "다음" 회원인 셈이다.
이 사장의 이같은 성공을 두고 일부에서는 올해 폭발적으로 불어닥친
인터넷 붐이 만들어낸 행운아로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터넷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데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중요한
기준은 최고경영자의 능력과 경영관이다.
특히 국내 인터넷산업을 외국계 업체가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음의
급부상은 단순한 "붐"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 사장을 잘 아는 사람들은 또 지난 95년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창업한 이래
기울인 노력과 이 사장의 합리적인 사고, 과감한 결단력에 점수를 준다.
이 사장은 연세대 전산학과를 나와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평범한 과학자였다.
성격도 내성적인데다 장래 희망으로 교수를 꿈꾸고 있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공부를 그만두고 귀국을 서두른 것은 당시 급부상하고
있던 월드와이드웹(WWW)을 접하면서부터였다.
월드와이드웹이 미국 등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되면서 인터넷산업이 부상
하는 것에 자극받아 여기서 기회를 잡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곧바로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설립했다.
처음에는 어느 특정제품으로 승부를 내겠다기 보다는 인터넷분야에서
재미있고 보람된 일을 해보자고 했다.
초기에는 고생을 많이 했다.
그룹웨어 등 인터넷솔루션, 콘텐츠 등 벌이는 사업마다 기술력은 인정
받았지만 수익은 신통치 않아 실패를 거듭했다.
고민끝에 새로 찾아낸 사업아이템이 미국 "핫메일" 서비스에서 힌트를
얻은 무료 E메일서비스.
"무료 E메일의 성공여부가 미국에서조차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과감히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인터넷은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연결해 주는 강력한
도구가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장의 확신은 그대로 들어 맞았다.
97년 5월부터 ''한메일넷''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서비스는 7개월여만에
10만명의 가입자를 유치했고 98년에는 1백만여명, 드디어 올해엔 5백만명을
돌파하는 등 폭발적인 성장세를 달렸다.
이 사장은 5백만명의 회원과 코스닥에서 끌어모은 자금을 바탕으로 내년
에는 야후를 제치고 다음을 최고의 포털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각오다.
"회원확보도 중요하지만 고객과의 관계유지가 더 중요합니다. 고객서비스
를 향상시키고 마케팅을 강화하는데 집중적으로 투자하겠습니다"
이 사장은 내년에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지에서 최고의 기술로 평가받은
인터넷메일 솔루션을 가지고 해외시장에도 적극 진출할 계획이다.
인터넷은 속성상 글로벌화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럴 바에는 적극적으로
해외에 진출해 기술력도 높이고 세계기업으로서의 도약도 노리겠다고 이
사장은 자신있게 말했다.
< 송태형 기자 toughlb@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