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길 < 숭실대 교수 / 중소기업학회장 >


거세게 불어온 벤처붐이 젊은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이들을 벤처의
세계로 뛰어들게 만들고 있다.

단기간에 벤처 붐을 조성하고 인재들을 벤처기업으로 눈을 돌리게 했다는
것은 한국경제의 밝은 전망을 가능케 하는 징조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벤처기업 발전경험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벤처창업 활성화를 도모
하다 보니 육성자금이 낭비되거나 유용되기도 하고 벤처특성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벤처기업이 양산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회사이름을 벤처 비슷하게만 고쳐도 주식 값이 뛰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벤처 붐에 편승, 일부 투자자들이 벤처투자의 위험을 과소 평가하는 "묻지마
투자"양상까지 보이고 있어 거품이 꺼진 후의 상황을 상상하면 어두운 면이
없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척박한 토양에 벤처 씨앗을 뿌려 벤처 붐을 조성한 점이 결코
가볍게 평가될 수는 없다.

점화에는 성공했다 해도 이제부터가 문제다.

벤처 붐이 거품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벤처정책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첫째, 벤처기업을 단기간에 계획적으로 육성하려는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돈을 풀어야 벤처기업이 키워지는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는 벤처붐을 조성하기 위해 정부가 앞장설 수밖에 없었지만 직접
지원보다 창업자가 나타날 수 있는 환경과 제도적 뒷받침에 주력해야 한다.

이는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벤처기업 육성목표가 설정되거나 최고위층이 관심을 가지게 되면 관료조직의
생리로 보아 자연히 직접지원에 매달릴 가능성이 커진다.

벤처기업 몇천 또는 몇만개 육성처럼 정책성공을 과시하기 좋은 게 어디
있는가.

벤처기업은 대학과 연구소를 비롯한 각종 관련기관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네트워크 속에서 싹트고 성장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둘째, 어떤 기업이 벤처인가를 규정하기는 사실상 어렵다는 점이다.

정부가 지원하겠다고 했으니 지원대상을 정해야 할 현실적 필요성은 있다.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상 형식요건을 갖추면 벤처기업으로
인정하게 돼 있으므로 벤처 본래의 의미를 가진 하이테크형 업체는 전체의
34%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기술수준이 낮은 기업들이 벤처확인을 받는 사례가 많아져 중기청이 엉터리
벤처를 솎아내기 위해 벤처확인요건을 강화하는 등 제도보완을 서두르고 있
다고 한다.

잘하는 것 같지만 이 경우도 과연 제대로 될 것인지 의문이다.

아무리 제도가 완벽해도 진짜 벤처기업만을 골라낼 수는 없을 것이다.

어찌 보면 기술수준이 높은 벤처기업을 단기간에 키우는 것이 무리인지도
모를 일이다.

허점이 없는 제도는 없거니와 벤처확인을 사람이 하는 것 아닌가.

벤처확인제도를 없애는 것이 아직은 이를지 모르나 어쨌든 벤처기업가에게서
도전정신을 빼앗아 정부의 벤처정책에 의존하는 기업가로 만들지는 않아야
한다.

셋째, 중소기업정책의 무게중심이 벤처지원으로 옮겨지면서 일반 중소기업은
소외감을 갖게 됐다.

벤처도 중요하지만 일반중소기업을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육성하는 일의
중요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

넷째, 창의성이 계속 솟아나야 벤처기업 활성화는 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창의성이란 남을 흉내내거나 기존의 것 중에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찾거나 만들어내는 것이다.

첨단산업이 고급두뇌의 지속적 공급 없이 존속할 수 있는가.

우리의 경우 수능시험문제를 쉽게 출제하는 것을 교육정책처럼 떠들고 있고
대학은 더 이상 방치돼서는 안될 만큼 황폐화 돼가고 있다.

모방으로 남을 이길 수 없다.

창의성과 교육과 벤처육성의 상관관계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해야 하지만
이걸 벤처청책 당국자에게 주문할 수는 없다.

이는 국가적 차원에서 중장기 비전을 제시할 일이다.

다섯째, 벤처지원 행정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현재 벤처지원을 중기청 정통부 과기부 재경 부 산자부 문광부와 지방자치
단체가 경쟁적으로 하고 있다.

같은 사업내용을 가지고 이름만 바꿔 여러 부처에서 중복하여 지원을 받는
사례도 생겼다.

지원제도의 내용도 문제지만 지원행정체계가 이래서는 안 된다.

부처간 기능혼선과 중복지원사례는 빨리 바로 잡아야 한다.

벤처지원이 아무리 인기과제라 하더라도 정부 각부처가 앞다투어 경쟁적으로
추진할 수는 없다.

벤처기업에 많은 기대가 걸려 있지만 실패할 가능성도 크다.

실패는 자연스런 일이며 그것 또한 경험이고 자산이라는 인식의 확산도
중요하다.

그래야 실패를 두려워 않는 도전적인 기풍을 진작시킬 수 있고 벤처에 대한
잘못된 환상도 깰 수 있는 것이다.

< erasms@yahoo.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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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서울대 경제학과
<>한국외대 경제학박사
<>저서:한.미.일.대만의 중소기업 비교연구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