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간쑤성 북서부 둔황시에 있는 모가오쿠는 그 규모가 파리의 루불미술관
과 맞먹는다.

명사산 기슭 1~6km에 걸쳐 벌집처럼 뚫린 4백92개소의 크고 작은 굴들의
4만5천평방미터에 달하는 벽면은 불상과 불경의 내용을 그린 1천45점의 채색
벽화들로 꽉채워져 있다.

굴안에는 흙으로 빚어 채색한 불상 등 2천여점의 소조상들이 들어차 있다.

이 미술품들을 일렬로 늘어놓으면 25km 길이의 거대한 화랑을 이룰 정도라니
그 규모가 대강 짐작된다.

366년 전진의 중 웨쭌이 굴을 파고 수행처로 삼은 것을 시작으로 13세기에
이르기까지 근 1천여년동안 석굴사원의 조성사업은 계속됐다.

북위 서위 북주 수 당 송 원등으로 수많은 왕조가 바뀐 탓으로 작품의
소재나 양식도 달라서 중국 불교문화의 변천을 보여주는 자연스런 박물관은
찾기 어렵다.

그뒤 돈황석굴은 사막의 먼지속에 쌓여 잊혀졌다가 긴 역사의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한 것은 청말인 1900년 5월29일 이곳에서 4만여점의 두루마리
고서 등이 발견돼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모가오쿠에 살던 도사 왕엔루는 밀폐된 창징둥에서 산처럼 쌓여있는
4만여점의 5~11세기 유물을 발견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1907년부터 러시아인 오루브제프, 영국의 탐험가 소틴,
고고학자 스타인, 프랑스의 동양학자 페리오 등이 뇌물을 주고 각각 유물들을
본국으로 실어날랐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도 그때 함께 프랑스로 실려갔다.

1902~1914년 일본의 오타니 탐험대도 유물을 챙겼다.

심지어 미국의 랭돈 워너는 벽화까지 마구 뜯어갔다.

정작 중국에는 껍데기만 남았다.

서구에는 ''둔황학''이란 학문분야가 새로 생겼다.

유물들은 지금 대영박물관, 프랑스 국립도서관, 기메미술관, 베이징도서관,
레닌그라드 동양학연구소, 일본 쇼도박물관에 흩어져 소장돼 있다.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에도 오타니가 남겨두고 간 유물이 일부 소장돼 온다.

중국 신장위그루자치구 쿠처의 협곡에서 최근 둔황석굴에 버금가는
"제2둔황석굴"이 발견됐다는 소식이다.

채색벽화와 글씨가 완전한 상태로 보존돼 있다고 한다.

2000년 모가오쿠발굴 1백주년을 앞두고 "둔황유물 반환운동"을 벌여온
중국인들에게 이처럼 기쁜 소식도 없을 듯 싶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