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유목민 근성과 21세기 .. 고승철 <산업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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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전 독일 어느 탄광.
점심시간이었다.
몇몇 한국인 광원들은 한손에 책을 들고 읽으며 식사를 했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등 꽤 어려운
책들이었다.
독일인 관리인이 옆에 앉자 한국인 광원은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내용에
대해 물었다.
그 관리인인들 무슨 수로 하이데거 저작에 대해 설명할 수 있었으랴.
한쪽 구석엔 터키인 광원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감자를 먹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문맹자라 작업시간표에 서명을 할 줄도 몰랐다.
독일인 관리인은 가난한 개도국 한국과 터키에서 온 광원들이 이렇게
대조적인 모습을 나타낸 데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그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언젠가 세계인의 관심권 안에 드는 나라가 될
것이라 믿었다.
험한 블루칼라 일을 하는 광원들조차 독일인도 이해하기 어려운 독일책들을
읽으며 학업과 돈벌이에 몰두하는 것을 목격하고...
당시 터키에서는 주로 저소득 농민들이 무더기로 독일에 갔다.
한국은 사정이 달랐다.
경제개발 초기에 독일이라는 나라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독일에 광원으로 갈 수 있다 하니까 명문대 독문과 출신이나 고시공부를
하던 법대 졸업생들이 다투어 지원했다.
지난 1백여년 동안 한민족은 세계사에서도 유례가 드물 정도로 엄청난
격동을 겪었다.
왕조시대가 막을 내렸고 주권이 침탈당하는가 하면 동족끼리 냉전, 열전을
치렀다.
이 과정에서 세계 곳곳에 민족들이 흩어지는 "디아스포라( Diaspora )현상"
이 나타났다.
러시아로 간 한민족들은 기구한 삶의 역정을 걸었다.
스탈린이 집권하자 극동의 고려인들을 수천km 떨어진 중앙아시아쪽으로
강제이주시켰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지에 고려인 수십만명이 살게 된 배경이다.
중국에 간 조선족들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곳에선 어려움 속에서도 교육수준이 높고 잘 사는 소수 민족으로 꼽힌다.
구한말에 하와이나 멕시코 사탕수수 농장에 일하러 간 사람 대부분도 망향의
한을 달래며 현지에서 눈을 감았다.
태평양전쟁 때 인도네시아 필리핀 사이판 등지로 끌려간 학병이나 정신대
여성들 가운데도 고향 땅을 끝내 밟지 못한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한민족의 "흩어짐 현상"의 초기엔 망국의 비운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60년대 이후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독일 광원이나 간호사 등이 그들이었다.
베트남 전쟁도 한민족의 국제화에 일조했다.
참전 용사 가운데 일부는 미국이나 호주 등지로 삶의 터전을 옮긴 것이다.
중남미에 간 농업이민이나 태권도 사범들도 한민족의 활동무대를 넓히는 데
기여했다.
중동 건설붐도 한몫 했다.
중동에 진출한 건설기술자 가운데 일부는 국제화 맛을 보았다.
이들은 현지에 눌러 앉거나 유럽으로 이주했다.
한국인의 흩어짐에 해외입양아들도 가세했다.
입양아 수출(?) 세계1위국이 바로 한국 아닌가.
미국 프랑스 스웨덴 벨기에 등 구미 각 지역에 한민족 핏줄을 타고 난
아기들이 줄지어 입양되고 있다.
한국인들은 지구촌 곳곳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오지를 누비는 세일즈맨들도 수두룩하다.
요즘 미국의 웬만한 대학엔 한국유학생들이 수백명씩이나 공부하고 있다.
초.중등 과정의 조기유학생들도 눈에 띈다.
한국 안에서도 이동성(mobility)은 두드러진다.
세계에서 이사가는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한국이다.
프랑스의 비평가 자크 아탈리는 21세기 생존에 적합한 특성을 "유목민
(nomad)성"으로 꼽은 바 있다.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최적의 장소로 끊임 없이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아탈리는 인터넷이 미래의 유목민에게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한민족은 21세기의 광활한 지구촌 무대에서 펄펄 날아다닐
준비를 잘 갖춘 셈이다.
단시간에 휴대폰이나 PC보급률이 한국처럼 높은 나라는 없다.
이런저런 점을 살펴보면 중앙아시아 대륙에서 한반도까지 흘러온 한국인의
핏속에 유목민 특성이 면면히 흘러왔음을 알 수 있다.
이 특성은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는 벤처정신과 맥을 같이 하기도 한다.
지난 달 90세 생일을 맞은 20세기 대표적 지성인 피터 드러커 교수는
한국경제신문에 보낸 특별기고에서 "한국의 발전사를 빼면 20세기 역사가
되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빌 게이츠 MS회장은 21세기에 약진할 나라로 스칸디나비아 3국과 한국,
싱가포르 등을 꼽기도 했다.
한민족은 새 밀레니엄 출발선에서 신발끈을 단단하게 매고 섰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발목을 잡는 세력들이 있다.
낡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정치권과 일부 관료들이 그들이다.
< cheer@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6일자 ).
점심시간이었다.
몇몇 한국인 광원들은 한손에 책을 들고 읽으며 식사를 했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등 꽤 어려운
책들이었다.
독일인 관리인이 옆에 앉자 한국인 광원은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내용에
대해 물었다.
그 관리인인들 무슨 수로 하이데거 저작에 대해 설명할 수 있었으랴.
한쪽 구석엔 터키인 광원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감자를 먹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문맹자라 작업시간표에 서명을 할 줄도 몰랐다.
독일인 관리인은 가난한 개도국 한국과 터키에서 온 광원들이 이렇게
대조적인 모습을 나타낸 데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그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언젠가 세계인의 관심권 안에 드는 나라가 될
것이라 믿었다.
험한 블루칼라 일을 하는 광원들조차 독일인도 이해하기 어려운 독일책들을
읽으며 학업과 돈벌이에 몰두하는 것을 목격하고...
당시 터키에서는 주로 저소득 농민들이 무더기로 독일에 갔다.
한국은 사정이 달랐다.
경제개발 초기에 독일이라는 나라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독일에 광원으로 갈 수 있다 하니까 명문대 독문과 출신이나 고시공부를
하던 법대 졸업생들이 다투어 지원했다.
지난 1백여년 동안 한민족은 세계사에서도 유례가 드물 정도로 엄청난
격동을 겪었다.
왕조시대가 막을 내렸고 주권이 침탈당하는가 하면 동족끼리 냉전, 열전을
치렀다.
이 과정에서 세계 곳곳에 민족들이 흩어지는 "디아스포라( Diaspora )현상"
이 나타났다.
러시아로 간 한민족들은 기구한 삶의 역정을 걸었다.
스탈린이 집권하자 극동의 고려인들을 수천km 떨어진 중앙아시아쪽으로
강제이주시켰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지에 고려인 수십만명이 살게 된 배경이다.
중국에 간 조선족들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곳에선 어려움 속에서도 교육수준이 높고 잘 사는 소수 민족으로 꼽힌다.
구한말에 하와이나 멕시코 사탕수수 농장에 일하러 간 사람 대부분도 망향의
한을 달래며 현지에서 눈을 감았다.
태평양전쟁 때 인도네시아 필리핀 사이판 등지로 끌려간 학병이나 정신대
여성들 가운데도 고향 땅을 끝내 밟지 못한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한민족의 "흩어짐 현상"의 초기엔 망국의 비운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60년대 이후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독일 광원이나 간호사 등이 그들이었다.
베트남 전쟁도 한민족의 국제화에 일조했다.
참전 용사 가운데 일부는 미국이나 호주 등지로 삶의 터전을 옮긴 것이다.
중남미에 간 농업이민이나 태권도 사범들도 한민족의 활동무대를 넓히는 데
기여했다.
중동 건설붐도 한몫 했다.
중동에 진출한 건설기술자 가운데 일부는 국제화 맛을 보았다.
이들은 현지에 눌러 앉거나 유럽으로 이주했다.
한국인의 흩어짐에 해외입양아들도 가세했다.
입양아 수출(?) 세계1위국이 바로 한국 아닌가.
미국 프랑스 스웨덴 벨기에 등 구미 각 지역에 한민족 핏줄을 타고 난
아기들이 줄지어 입양되고 있다.
한국인들은 지구촌 곳곳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오지를 누비는 세일즈맨들도 수두룩하다.
요즘 미국의 웬만한 대학엔 한국유학생들이 수백명씩이나 공부하고 있다.
초.중등 과정의 조기유학생들도 눈에 띈다.
한국 안에서도 이동성(mobility)은 두드러진다.
세계에서 이사가는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한국이다.
프랑스의 비평가 자크 아탈리는 21세기 생존에 적합한 특성을 "유목민
(nomad)성"으로 꼽은 바 있다.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최적의 장소로 끊임 없이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아탈리는 인터넷이 미래의 유목민에게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한민족은 21세기의 광활한 지구촌 무대에서 펄펄 날아다닐
준비를 잘 갖춘 셈이다.
단시간에 휴대폰이나 PC보급률이 한국처럼 높은 나라는 없다.
이런저런 점을 살펴보면 중앙아시아 대륙에서 한반도까지 흘러온 한국인의
핏속에 유목민 특성이 면면히 흘러왔음을 알 수 있다.
이 특성은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는 벤처정신과 맥을 같이 하기도 한다.
지난 달 90세 생일을 맞은 20세기 대표적 지성인 피터 드러커 교수는
한국경제신문에 보낸 특별기고에서 "한국의 발전사를 빼면 20세기 역사가
되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빌 게이츠 MS회장은 21세기에 약진할 나라로 스칸디나비아 3국과 한국,
싱가포르 등을 꼽기도 했다.
한민족은 새 밀레니엄 출발선에서 신발끈을 단단하게 매고 섰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발목을 잡는 세력들이 있다.
낡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정치권과 일부 관료들이 그들이다.
< cheer@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