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신 < 서울중앙병원 정형외과 의사 >

지금 286컴퓨터를 쓰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공짜로 준다고 해도 가져가는 사람이 없어 치우는데 오히려 돈을 들여야 할
것이다.

컴퓨터발전의 표본은 전자제품이 가장 상징적이지만 이에 못지 않게
의료부문도 10~20년전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달라졌다.

발전이란 지식과 함께 기술 및 거기에 이용되는 재료를 다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 의료계의 재료부문을 컴퓨터로 비교하면 286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개발한 의료재료가 모두 안전성이 검증된 것은 아니지만 안전성이
검증된 것도 값 비싸다는 이유로 사용이 제약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어느 의사고 환자의 치료가 잘 돼 고맙다는 인사를 받고 싶다.

치료가 지지부진하여 골치를 앓고 싶어하는 의사는 한명도 없다.

또 1만원을 투자하여 치료도 잘 되고 기간이 단축되는 효과를 거둔다면
당연히 그 방법을 취한다.

그러나 이것이 그리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한가지 예를 들면 수술후 환부를 닫을 때 요즘은 스테플을 사용한다.

이렇게 하면 5분도 채 안돼 피부 봉합이 이루어지고 비용이 1만여원 밖에
안든다.

이것을 실로 꿰매면 30분 이상 걸린다.

그만큼 마취 약제를 환자에게 투입해야 할 뿐만 아니라 비용도 더 들게
되지만 사용이 금지돼 있다.

이것은 한 예에 불과하다.

이런 재료를 사용하면 삭감이 되고 삭감된 액수는 모두 과잉 진료내지
과다청구 행위로 간주돼 보도된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병원이 모두 도둑놈으로 생각되기 쉽다.

물론 일부 병원이나 의사가 쓰지도 않고 쓴 것처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병원측 입장은 환자에게 들어간 재료 비용을 못받아 속상한데
도둑놈으로까지 몰리니 억울하기 짝이 없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국민이 적은 의료비를 내고 치료를 받는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오랜 제약은 갖은 편법을 유발시킨다.

그 결과 치료비는 치료비대로 내고 재료는 구닥다리를 사용하게 되기
십상이다.

일부 제도를 벗어난 의사나 병원을 구실로 제약만 할 것이 아니라 알릴 건
알리고 풀건 풀어서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