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에서 추진중인 신용불량자에 대한 "밀레니엄"사면은 상당히
미묘한 문제다.

IMF사태로 불가피하게 부도를 냈거나 적색거래자로 분류된 사람들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구제해줌으로써 국민화합을 다지고
경제활력을 불어넣자는 취지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지난 7월말 현재 전국의 신용불량자수는 부도를 낸 13만명과 연체때문에
적색거래자로 분류된 2백30만여명 등을 합해 모두 2백48만6천5백82명이나
된다.

외환위기가 터진 직후인 97년말에 비해 1백만명 가까이 늘어나 국민 1천명당
52명이나 되는 엄청난 숫자다.

신용불량자수가 이렇게 많다 보니 경제정상화를 앞당기기 위해서도 이들을
사면해줘야 한다는 소리가 나올 만도 하다.

그러나 신용불량자 사면은 결코 간단치 않은 일이다.

무차별적으로 사면해줄 수는 없고 "선의"의 신용불량자들을 골라내야 하는데
무엇을 기준으로 대상자를 선별하느냐는 문제가 여간 애매하지 않다.

일부에선 외환위기 이후 실직이나 도산으로 빚을 갚지 못했거나 빚보증을
섰다가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되 신용불량의 정도도
함께 고려하자고 주장한다.

일리 있는 의견이지만 현실적으로 단순히 외환위기 이전이냐 이후냐는
시기구분이나 신용불량 정도만으로 신용불량자들의 "선의"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

그렇지 않아도 신용불량자 사면은 똑같이 어려운 상황에서 신용을 지킨
사람들과 형평성 시비가 있을 수 있는데다 도덕성 해이를 부추겨 신용사회
정착을 방해한다는 비판도 많은데 이렇듯 선별기준마저 애매하니 정말 어려운
일이다.

또한가지 곤란한 점은 IMF사태가 불가항력적이기 때문에 신용불량자들을
사면해줘야 한다면 앞으로도 큰 경제위기를 겪을 때마다 신용불량자 사면을
되풀이해야 한다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가 명심해야 할 점은 지금도 경제위기는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만일 대우사태 수습이 잘 안되거나 석유파동 같은 돌발
사태가 터져 또 큰 위기를 맞는다면 몇년 뒤 또다시 비슷한 사면주장이
없으리란 보장이 없게 된다.

일부에서는 부실금융기관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에 빗대 사면의 타당성을
강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공적자금 투입이 국민경제 회생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듯이,
신용불량자 처리문제도 거래금융기관들이 개별적으로 비용.편익을 따져
원금을 탕감하거나 아니면 기록관리기간을 단축하는 등 다양한 선택을 하게
하는 것이 올바른 해법이라고 본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