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의 날] 피땀으로 일궈낸 경제 '금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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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년 11월30일 수출 1억달러 달성을 기념해 제정된 무역의 날이 올해로
36회째를 맞았다.
이 36년 동안 수출은 한국경제를 이끌어온 기관차였다.
한국의 수출사는 한국의 기업사이자 경제사다.
정부가 57년 무역법을 제정한 것도 미국의 대외원조 축소로 침체된 국내
경기를 수출로 활성화시키기 위해서였다.
60년대 역시 수출은 한국기업을 이끌어온 강력한 엔진이었다.
강력한 수출드라이브 정책과 맞물리면서 연평균 41%라는 경이적인 수출
증가율을 지속, 고성장의 기반을 마련했다.
7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로 전 세계가 혹한기를 겪을 때도 수출은 한국
경제를 지탱해 줬다.
수출입국의 기치아래 연평균 37.5%의 수출증가율을 기록하며 77년에는
수출 1백억달러를 달성, 한국을 신흥 개발도상국으로 부상시켰다.
80년대는 저유가 저금리 저달러화라는 3저 현상에 힘입어 86년부터 4년
연속 무역흑자를 거두는 등 수출의 결실을 거둔 시기였다.
신보호무역주의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무역정책도 개방 및 통상마찰
해소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87년에는 수출과 수입의 균형적 발전이라는 대세에 부응하기 위해 수출의
날 명칭이 무역의 날로 변경됐다.
90년대는 위기의 시기였다.
95년에는 세계에서 12번째로 수출 1천억달러를 돌파하는 값진 성과를 거둔
한해였지만 이듬해인 96년에는 2백6억달러라는 사상 최대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수출이 늘수록 수입이 덩달아 증가하는 취약한 산업구조 탓이었다.
특히 대일무역수지 적자폭이 계속 확대되면서 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95년까지 30년간 대일적자 누계는 1천억달러를 넘어섰다.
97년 외환위기를 맞게 된 원인중 하나도 매년 누적된 무역적자였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수출의 공로다.
지난해 3백90억달러라는 사상 최대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면서 국가를
파산상태에서 건져냈다.
올해도 출발은 불안했다.
지난 2월까지 수출은 10개월째 감소세를 지속했다.
그러나 불과 10여개월 남짓 사이에 한국 경제는 활력을 되찾아가고 있다.
반도체와 컴퓨터 등 고부가가치 제품의 수출이 늘면서 목표했던
1천3백40억달러를 초과달성할 전망이다.
3.4분기 경제성장률이 12.3%에 달해 이제는 경기과열을 우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이처럼 수출은 경기활성화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했다.
무역수지 흑자는 외환보유고로 이어지고 이는 곧 국가신용도로 연결된다.
환율과 금리에도 영향을 미친다.
안정적인 경제운용의 기반인 셈이다.
수출이 증가하면 고용이 늘고 국민소득 역시 높아진다.
수출이 10% 늘어나면 국민소득은 77억달러 증가하고 경제성장률은 1.8%
포인트 높아진다.
1인당 국민총생산(GNP)도 1백70달러 늘어나 4인가족 기준 연간 1백만원
가까이 소득이 증가한다.
또 41만명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해 실업률을 2%포인트 가까이 낮출 수
있다.
한 마디로 경제발전의 촉매제다.
이 모든 한국경제의 명암뒤에는 무역인들의 땀과 눈물이 배어 있다.
사람과 시간만이 유일한 자원이었던 시기에서 악전고투하며 한국경제를
일궈 냈다.
이제 수출도 지난 40여년간의 세월을 정리하고 21세기를 준비할 때다.
세계무역대국이라는 명성에 집착하지 않고 차분하게 안정적인 성장기반을
마련해야할 시기다.
일부 품목에만 의존해온 수출구조에서 탈피하고 몇몇 지역에 편중된 수출
시장도 다양화해야 한다.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수출구조를 고도화시켜 수출단가도 높이고 수출기반을
확대하기 위한 해외투자도 착실하게 이뤄져야 한다.
급변하는 무역환경에 대처할 수 있는 무역정책도 나와야 한다.
21세기 한국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다시 한번 무역인들의 분발이 기대
되는 시점이다.
< 이심기 기자 sglee@ked.co.kr >
[ 한국 무역 약사 ]
<> 98년 3월 무역투자 진흥 대책회의 부활
<> 97년 3월 무역업, 신고제에서 등록제로 전환
10월 수출 1천억달러 달성
<> 95년 1월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12월 전기전자제품 수출 2백억달러 돌파
<> 91년 2월 1월 무역적자 17억달러로 사상 최대 기록
<> 89년 1월 남북한 최초 구상무역 승인(현대종합상사)
<> 87년11월 한국 섬유류 수출 1백억달러 달성
<> 86년 1월 미국 자동차 수출 개시
<> 81년11월 수출 200억달러 돌파
<> 78년 2월 13개 상사, 종합무역상사로 지정
<> 77년12월 수출 100억달러 달성
<> 75년 4월 종합무역상사제도 도입
<> 70년12월 수출 10억달러 달성
<> 64년12월 수출 1억달러 달성(수출의 날 제정)
<> 62년 3월 수출진흥법 제정
<> 60년 4월 대일통상 재개
<> 56년12월 무역업 공포
<> 47년10월 관세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조인
<> 46년 1월 무역업 허가제 실시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일자 ).
36회째를 맞았다.
이 36년 동안 수출은 한국경제를 이끌어온 기관차였다.
한국의 수출사는 한국의 기업사이자 경제사다.
정부가 57년 무역법을 제정한 것도 미국의 대외원조 축소로 침체된 국내
경기를 수출로 활성화시키기 위해서였다.
60년대 역시 수출은 한국기업을 이끌어온 강력한 엔진이었다.
강력한 수출드라이브 정책과 맞물리면서 연평균 41%라는 경이적인 수출
증가율을 지속, 고성장의 기반을 마련했다.
7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로 전 세계가 혹한기를 겪을 때도 수출은 한국
경제를 지탱해 줬다.
수출입국의 기치아래 연평균 37.5%의 수출증가율을 기록하며 77년에는
수출 1백억달러를 달성, 한국을 신흥 개발도상국으로 부상시켰다.
80년대는 저유가 저금리 저달러화라는 3저 현상에 힘입어 86년부터 4년
연속 무역흑자를 거두는 등 수출의 결실을 거둔 시기였다.
신보호무역주의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무역정책도 개방 및 통상마찰
해소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87년에는 수출과 수입의 균형적 발전이라는 대세에 부응하기 위해 수출의
날 명칭이 무역의 날로 변경됐다.
90년대는 위기의 시기였다.
95년에는 세계에서 12번째로 수출 1천억달러를 돌파하는 값진 성과를 거둔
한해였지만 이듬해인 96년에는 2백6억달러라는 사상 최대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수출이 늘수록 수입이 덩달아 증가하는 취약한 산업구조 탓이었다.
특히 대일무역수지 적자폭이 계속 확대되면서 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95년까지 30년간 대일적자 누계는 1천억달러를 넘어섰다.
97년 외환위기를 맞게 된 원인중 하나도 매년 누적된 무역적자였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수출의 공로다.
지난해 3백90억달러라는 사상 최대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면서 국가를
파산상태에서 건져냈다.
올해도 출발은 불안했다.
지난 2월까지 수출은 10개월째 감소세를 지속했다.
그러나 불과 10여개월 남짓 사이에 한국 경제는 활력을 되찾아가고 있다.
반도체와 컴퓨터 등 고부가가치 제품의 수출이 늘면서 목표했던
1천3백40억달러를 초과달성할 전망이다.
3.4분기 경제성장률이 12.3%에 달해 이제는 경기과열을 우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이처럼 수출은 경기활성화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했다.
무역수지 흑자는 외환보유고로 이어지고 이는 곧 국가신용도로 연결된다.
환율과 금리에도 영향을 미친다.
안정적인 경제운용의 기반인 셈이다.
수출이 증가하면 고용이 늘고 국민소득 역시 높아진다.
수출이 10% 늘어나면 국민소득은 77억달러 증가하고 경제성장률은 1.8%
포인트 높아진다.
1인당 국민총생산(GNP)도 1백70달러 늘어나 4인가족 기준 연간 1백만원
가까이 소득이 증가한다.
또 41만명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해 실업률을 2%포인트 가까이 낮출 수
있다.
한 마디로 경제발전의 촉매제다.
이 모든 한국경제의 명암뒤에는 무역인들의 땀과 눈물이 배어 있다.
사람과 시간만이 유일한 자원이었던 시기에서 악전고투하며 한국경제를
일궈 냈다.
이제 수출도 지난 40여년간의 세월을 정리하고 21세기를 준비할 때다.
세계무역대국이라는 명성에 집착하지 않고 차분하게 안정적인 성장기반을
마련해야할 시기다.
일부 품목에만 의존해온 수출구조에서 탈피하고 몇몇 지역에 편중된 수출
시장도 다양화해야 한다.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수출구조를 고도화시켜 수출단가도 높이고 수출기반을
확대하기 위한 해외투자도 착실하게 이뤄져야 한다.
급변하는 무역환경에 대처할 수 있는 무역정책도 나와야 한다.
21세기 한국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다시 한번 무역인들의 분발이 기대
되는 시점이다.
< 이심기 기자 sglee@ked.co.kr >
[ 한국 무역 약사 ]
<> 98년 3월 무역투자 진흥 대책회의 부활
<> 97년 3월 무역업, 신고제에서 등록제로 전환
10월 수출 1천억달러 달성
<> 95년 1월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12월 전기전자제품 수출 2백억달러 돌파
<> 91년 2월 1월 무역적자 17억달러로 사상 최대 기록
<> 89년 1월 남북한 최초 구상무역 승인(현대종합상사)
<> 87년11월 한국 섬유류 수출 1백억달러 달성
<> 86년 1월 미국 자동차 수출 개시
<> 81년11월 수출 200억달러 돌파
<> 78년 2월 13개 상사, 종합무역상사로 지정
<> 77년12월 수출 100억달러 달성
<> 75년 4월 종합무역상사제도 도입
<> 70년12월 수출 10억달러 달성
<> 64년12월 수출 1억달러 달성(수출의 날 제정)
<> 62년 3월 수출진흥법 제정
<> 60년 4월 대일통상 재개
<> 56년12월 무역업 공포
<> 47년10월 관세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조인
<> 46년 1월 무역업 허가제 실시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