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숙씨 약력 ]

<> 44년 밀양출생
<> 고려대 명예박사
<> 67년 동인극장 연극데뷔
<> 극단산울림 창단 단원
<> 이해랑 연극상, 대통령표창, 올해의 배우상 등 수상
<> 제6대 환경부장관
<> 인천방송 일요일에 만난 MC, 평화 방송 손숙의 사랑가 행복가, SBS
라디오 아름다운 세상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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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 서면 사람냄새가 납니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평생 연극의 길을 갈
생각입니다"

지난 16일부터 산울림 소극장에서 공연중인 모노 드라마 "그 여자"(연출
임영웅)로 다시 관객 앞에 선 손숙(55)씨.

지난 6월의 모스크바 공연 이후 5개월만에 연극무대에 서는 손씨는 35년
경력의 연기자답지 않게 상기된 표정이었다.

"무대가 전혀 낯설지 않은 데도 긴장이 돼 연기에 힘이 들어갑니다.
저는 떠난 적이 없는데 제가 다시 연극무대로 돌아왔다며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나 봅니다"

그에게 "그 여자"를 통해 연극무대에 서기까지 걸린 6개월은 속앓이의
연속이었다.

장관직을 맡지 않았더라면 편안히 휴식으로 보냈을 기간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연극인 출신 여성 장관이라는 이유로 취임초기부터 말이 많았던 장관직은
모스크바 공연때 받은 격려금 파문으로 결정타를 맞고 2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한동안 지난 일들을 언급하기 꺼려했던 손씨는 이제 담담하게 자신의
속내를 말했다.

그는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일부 엘리트층및 보수언론의 여성과
예술계에 대한 뿌리깊은 경시풍조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제가 여성이 아니고 연극인이 아니었다면 그렇게까지 비판을 가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게다가 지키는 약속에 대해 몰매를 가하는 것에
대해서는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만일 제가 모스크바공연을 하지
않았다면 그때는 대외적인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비판이 쏟아졌을
것입니다"

6개월은 가슴의 응어리까지 씻어내기는 짧은 시간이었다.

연극연습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 잊고 지냈던 기억들이 다시 떠오른 듯
그는 당시의 심경을 털어놓았다.

"무엇보다 제가 비리정치인마냥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게 정말
참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저를 아껴주시던 팬들도 그렇게 생각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손씨의 이런 걱정은 기우였다.

그가 예상보다 빨리 연극을 시작할 수 있었던 데는 팬들의 성원이 컸다.

인천의 대부도에 사는 한 부부는 손수 농사지은 쌀을 들고 찾아와
격려해줬다.

"그 여자"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위기의 여자"를 1인극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남편의 외도로 인해 한 중년 여성이 겪게되는 자아의 변화를 그리고 있다.

가정을 지키기위해 남편에게 매달리던 원작과 달리 상처를 딛고 홀로
일어서는 여성의 모습을 강조했다.

산울림 창단 30주년 마지막 시리즈로 올해초 기획됐지만 손씨의 입각으로
기약없이 연기됐던 작품인데다 자신의 삶과 닮은꼴인 이 작품에 그는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다.

"극중 주인공 여성의 삶은 저뿐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과 많은
점이 닮았습니다. 그래서 책 한권 분량의 대사를 외우는 고통을
감수하고서라도 관객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극중 마지막 대사엔 지난 여름의 위기를 딛고 일어서는 손씨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나는 두렵습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구원을 청할 수 없다는 걸 이제
압니다. 두렵긴 하지만 나는 곧 문을 열겁니다. 거기 낯선 미래가 새로운
미래가 나를 기다리고 있겠죠. 미래의 문이 열리려고 합니다. 천천히."

< 김형호 기자 chsan@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