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에 겪었던 결벽증세가 다시 나타났다는 직장인이 찾아 왔다.

책상이 깨끗하게 정돈돼 있지 않으면 불안하고 서류정리를 해도 뭔가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전기와 가스를 수시로 확인하는가 하면 사람을 만나도 피해를 주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는 것이다.

사연을 들어보니 발단은 친구에게 5백만원을 보증섰다 물린데서 시작됐다.

화가 났지만 소식이 끊겨서 혼자 애만 태우다 예전의 증세가 재발된 것
같았다.

의학적으로 이같은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은 단순한 강박관념을 넘어 강박
장애라는 병에 걸린 것으로 진단된다.

공통적인 특징은 평소 매우 양심적이고 매사에 완벽을 기한다는 점이다.

일종의 완전벽이다.

어려서부터 자녀에게 주어진 틀안에서 또박또박 챙기며 살아야 된다는
부모의 교육적 영향이 이같은 성격을 형성시킨다.

어느정도의 완전벽은 인간 관계에서 신의를 북돋아준다.

그러나 완전성향을 넘어 병적인 상태가 되면 "완전", "완벽"이란 용어에만
매달려 본인은 큰 괴로움을 겪게 된다.

자연히 일의 능률도 떨어지고 한가지 이상의 일을 처리해야 할때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

너무 잘 하겠다는 의욕에 일을 자꾸 뒤로 미루다 결국 아무 것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강박장애는 어릴적 성장환경의 영향도 있지만 뇌의 특정 부위에 있는 신경
전달 물질의 조건화된 대사의 결과라는 설도 있다.

어느 정도까진 화학적 조절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해가 없는 약물을 복용하는데 대해 특별한 저항을 가질 필요는 없다.

이와함께 강박적 성향이 높은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을 할 필요가 있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자신을 너그럽게 봐주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자신의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는 훈련도 필요하다.

이것이 힘들면 일기나 편지를 쓰는 것도 좋다.

시나 음악에 취미를 붙여 감정을 스스로 정화하는 방법도 큰 도움이 된다.

신승철 < 남서울병원장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