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신 < 서울중앙병원 정형외과 의사 >

어머니가 싸 주시는 도시락은 파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

아무리 진수성찬으로 반찬을 마련했다 하더라도 파는 것은 쉽게 질려서 금방
싫증이 난다.

그 차이는 어머니의 도시락에는 정성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의사가 환자를 진료할 때도 환자에 대한 정성이 부족하면 좋은 치료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환자도 의사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병이 쉽게 낫지 않는다.

요즘은 사회가 복잡해져서 모든 것을 사무적으로, 일률적으로 처리하려
한다.

그러다보니 인간적인 면이 중시돼야 할 의사와 환자 사이도 "무미건조"하게
돼 간다.

사회 분위기는 여기에 한술 더 떠 대립의 관계로 인식돼 가고 있어
안타깝다.

의료나 의사에 관한 보도들은 부정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몸을 맡기고 치료를 의탁해야 할 환자들은 의사를 믿지 못한다.

혹시 의사가 실수나 하지 않을까, 나를 실험대상으로 삼지는 않을까,
불필요한 검사나 처치를 하여 치료비를 과다하게 내지는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면 아무리 좋은 치료를 받아도 병이 쉽게
나을 리 없다.

의사들도 환자의 손 한번 잡아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주면 좋으련만
혹시 결과가 잘못되면 꼬투리나 잡히지 않을까 걱정되는 나머지 자기
방어에만 급급, 환자에게 정을 주지 못한다면 좋은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환자와 의사와의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의사는 불신을 불식시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대다수의 의사가 자기의 본분을 지키며 환자를 돌보고 있다.

하지만 가끔은 생각만 해도 부끄러운 행동을 하는 일부 의사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의료계는 이런 의사를 징벌하는 "자정운동"을 펼쳐야 한다.

사회단체나 언론도 부정적 측면만 내세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정적인 요소가 더 감각적이기에 대중에게 어필하는 요소가 많겠지만 이는
불신감만 조장하여 궁극적으로 환자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가 없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