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면적이 5평을 약간 넘는 공간(4.2x4.2m)에 6명이 영문모른채 갇혀 있다.

경관 여의사 여대생 전과자 자폐증환자 등 성분이 각각 다른 보통사람들이다

그들이 갇힌 곳은 1만7천여개의 정육면체(큐브)로 구성된 대형건물의 방
하나.

벽마다 출구가 있지만 잘못 나가면 무서운 죽음의 덫에 걸린다.

탈출을 포기하면 죽을 수밖에 없으니 성공률이 거의 없는 생명통로를 찾을
수밖에 없다.

아무런 전후 설명도 없이 이런 극한상황을 설정해 놓고 이들이 어떻게
죽음의 소굴을 탈출하는지 구경하라니 별난 영화도 다 있다.

똑같이 생긴 방이 1만개가 넘게 있는 건물이 과연 있을 수 있는가.

"큐브"라는 제명 자체가 엉뚱한 데다가 어려운 고등수학까지 나와 머리가
산란하다.

무슨 두뇌 훈련이라도 시킬 일이 있나 싶은 영화다.

미로찾기는 그런대로 흥미를 느끼겠는데 소수풀이와 3차방정식에선 난감해
진다.

거기에다 SF요소를 가미해 성격마저 애매하다.

수학적SF스릴러라고 할까?

영화분류를 다시 해야 할 판이다.

이해가 쉽지 않은데도 관객을 사로잡는 요소가 상당하다.

젊은층 관객이 많고 네티즌들도 "보고싶은 영화"로 꼽는다.

그들이 호기심이 아닌 진심으로 이 영화를 탐닉했다면 높이 살만하다.

고급 두뇌 플레이를 즐겼대서가 아니다.

적어도 이 영화는 오락성을 거부하는 감독의 실험정신이 전편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름나거나 잘생긴 배우는 구경조차 할수 없고 그 흔한 키스신도 보이지
않는다.

총소리는 한방도 울리지 않으며 누구도 무술솜씨를 자랑하지 않는다.

극적인 반전도 없이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머리싸움만 지루하게 이어질
뿐이다.

그렇다고 결과가 해피엔딩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 영화는 같은 배를 탄 조난자들이 난파직전의 위기를 맞아 어떤 인간심리
를 갖는지를 매우 시사적으로 보여준다.

큐브속의 6인은 그야말로 극한상황의 공동운명체로서 중반까지는 협조가
잘된다.

경관은 지도자로 나서고 전과자는 탈옥의 노하우를 제공한다.

여의사는 살신성인하는가 하면 여대생은 미로찾기에서 수학능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희생자가 늘어나고 일이 꼬이면서 단결이 흐트러져 서로간 질시와
반목이 움튼다.

결국 생존자는 자폐증 환자 한사람으로 압축되는데 재난영화치고는 좀
엉뚱한 결말이다.

무명의 빈센조 나탈리 감독(캐나다)은 인간성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이 처녀작을 만든 것 같다.

아무리 양심적인 인간도 절체절명의 순간에선 이기적으로 돌아선다는 것을
지나치게 앞세운 인상이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최후의 생존자로 정신질환자 한사람만 남긴 것.

사투를 벌인 나머지 사람들은 끝내 생존권에 들지 못한다.

막판의 갈등을 겪으면서 누구도 미워하지 않은 자폐증청년은 "순수한 영혼"
의 프리미엄을 톡톡히 얻은 셈이다.

그를 살릴 요량이었다면 탈출에 혁혁한 공로를 세운 여대생을 동반시키는
것이 재미가 더 했을텐데...

공로주 배정에 감독의 개인감정(?)이 작용한 것 같아 아쉽지만 그런 반
상식때문에 영화의 개성미가 돋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 편집위원 jsrim@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