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금리가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대란설이 난무하던 지난달 하순에 비기면 회사채 금리가 2%포인트 가까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니 우선은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시중금리의 이같은 하락세를 정상적인 시장안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에 이르면 사정은 달라진다.

채권시장의 잠재적 불안은 오히려 더욱 커져가고 있다는 일부의 시각조차
없지 않다.

최근의 금리안정은 지난달 27일 발족한 채권안정기금이 그동안 약 10조원
어치의 채권을 사들인 것이 결정적 요인이었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과감한 매수주문을 통해 급한 매물을 흡수해내고 무제한의 채권매입을
선언하면서 매도공세를 차단한 결과가 금리하락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채권안정기금이 시장개입을 시작한 이후 그나마의 정상 거래조차
자취를 감추고 있고 회사채 발행이 극도로 위축되는 등의 부작용들도 점차
심화되고 있다.

안정기금 외에는 채권을 사들이는 세력이 없다는 사실은 지금의 금리를
아무도 "정상금리"로 보지 않는다는 강력한 반증에 다름 아니다.

올들어 매달 2조8천억원 수준에서 발행되던 회사채가 이달들어 1조원을
밑돌고 있는 것 또한 채권 인수기관들이 지금의 금리를 한시적인 것으로
평가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증거의 하나다.

그러다보니 기관투자가들 사이에는 채권안정기금이 만들어놓는 높은 채권
가격을 일종의 공짜 보조금으로 간주하는 분위기까지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채권안정기금에 돈을 댄 은행들까지 최근에는 안정기금에 채권을
팔고 있고 투신사들은 채권을 비싸게 팔아 넘기면서 수천억씩의 매매차익을
마치 정부보조금처럼 할당, 배분받고 있다.

이는 아랫돌을 뽑아 윗돌을 괴는 것과 다를바 없는 상황이며 동시에 금융
기관들의 투자위험을 공적기금에 전가하는 행위와도 다르지 않다.

시장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가운데 채권 가격만 올라가는(금리는 안정되는)
이런 식의 시장안정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당국이 굳이 그레이(투기)펀드라는 아이디어를 짜낸 것도 채권시장이
실질적으로는 마비상태라는 저간의 속사정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장을 안정시키려는 당국의 충정이야 이해하지 못할 바가 아니지만 문제는
그 방법론이다.

명목 금리의 급속한 안정만을 추구하는 지금과 같은 방법은 고도의 자율이
중시되는 채권시장 전체를 장기적으로 기형화해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시장개입은 시장원리에 맞게, 그리고 ''시장이 받아들일 수 있는 금리수준''을
목표로 진행되어야 한다.

그것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