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분 < 방송 작가 >

"날 좀 꺼내줘. 나는 드라이버지 쇠파이프가 아니란 말이야!"

몇주째 가방속에서 빛을 못보는 드라이버의 절규.

가을 하늘 한번 못보고 현관 구석에 박혀있는 내 클럽들이다.

내가 골프장을 찾지 않는 이유는 몸이 아파서도 아니고 골프에 흥미를
잃어서도 아니다.

차라리 그런 이유라면 덜 서럽다.

이유는 "지갑이 얇아져서"이다.

얼마전까지 쇼트게임 감 좀 잡아보겠다고 적잖은 돈을 들여 집중적으로
골프장에 나갔었다.

그 덕분인지 쇼트게임은 는 듯하나 주머니엔 찬바람이 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우리나라 골프장은 너무 비싸다.

한번 플레이 할라 치면 월수입의 적지않은 부분이 날아간다.

그린피 약 10만원에 캐디피 합하고 그늘집에서 냉수로 채우며 볶음밥 하나만
먹어도 능히 15만원 정도가 든다.

나를 비롯한 샐러리맨에게는 실로 엄청난 금액이다.

여자인 나는 15만원으로 그친다 쳐도 남자들은 더할 것이다.

약간의 내기라도 한다면 말이다.

떼돈 버는 사람이 아닌 이상 아무리 호기있게 "골프없이 못살아"라고 말해도
분명 필드행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눈뜨고 일어나면 한국선수들이 세계골프 정상에 올랐다고 떠들썩한데 왜
골프하기는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것일까?

외국에는 그린피 1달러짜리 골프장도 있다고 한다.

물론 3백달러짜리 골프장도 있다.

물론 1달러짜리의 코스상태는 형편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가.

나처럼 드라이버가 울고 있는 사람은 1달러짜리 골프장에 가면 된다.

그리고 3백달러를 주고서라도 최상의 코스를 즐기고 싶은 사람은 3백달러
골프장에 가면 되는 것.

우리나라는 그런 선택의 폭이 너무 없다.

내 생각에 골프장은 꼭 18홀짜리일 필요가 없다.

무리하게 18홀 다 채우려고 만들면 공사비 많이 들테고 그러면 비싸진다.

골프장은 4홀짜리도 좋고 7홀짜리도 좋다.

지형이나 상황에 맞게 몇홀짜리라도 값싸게 만들어 적은 비용으로 즐길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처럼 여유가 없거나 바쁜 사람들은 그같은 몇홀짜리 골프장에서
플레이하면 된다.

그래도 골프는 여전히 즐거울 테고 게임의 진수를 만끽할수 있다.

라운드하다 맘이 변하면 몇번 더 돌며 18홀 채우면 되는 것아닌가.

하루빨리 우리나라에도 그런 골프장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하늘은 높고 푸르지만 어두운 골프백 속에 방치돼 있는 내 드라이버.

그 드라이버는 화가나서 헤드커버 찾아쓰고 가출하기 전에 말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