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들 사이에서 인플레를 염려하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민간연구소들은 물론이고 한국개발연구원(KDI)도 21일 경제전망을 발표
하면서 "물가안정에 대한 통화당국의 확고한 의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마침 이날자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도 "아시아가 인플레 위협을 경계하고
있다"며 특히 한국의 인플레 가능성을 상세히 전했다.

올해 물가 상승률이 사상최저 수준에 머물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보면 이같은
우려의 목소리가 성가신 잔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경제지표를 세심히 뜯어보면 곳곳에서 고개를 들고 있는 인플레
압력을 확인할 수 있다는게 인플레 경계론자들의 지적이다.

<> 수요측면의 인플레 요인 =그동안 물가상승을 억제해온 디플레 갭(총공급
능력-총수요)은 올들어 급속히 축소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내년도 경제전망에서 "평균수준의 공장가동률(79%
내외)을 가정할 때 총공급여력은 4백57조-4백64조원인데 비해 내년에 경제가
6.5% 성장하면 4백60조원 내외의 수요가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고정투자의 정상화나 생산성의 지속적 상승이 뒷받침되지 않는한
2000년 하반기에는 물가상승압력이 현재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KDI는 한발 더 나아가 "디플레 갭이 거의 완전히 해소돼 가고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수요측면에서 또하나의 인플레 경고 싸인은 통화유통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점이다.

통화량이 같더라도 돈이 도는 속도가 빨라지면 물가가 오르게 된다.

그동안은 한은이 돈을 풀어도 통화유통속도가 뚝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물가안정이 유지됐다.

그러나 올들어 신용경색이 풀리면서 돈이 도는 속도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실제로 통화유통속도 하락률은 작년 4분기의 16.1%에서 올 2분기에는
6.7%로 둔화됐다.

그만큼 통화량 증가가 물가에 미치는 상승압력이 커진 셈이다.

<> 비용측면의 인플레 요인 =대부분의 이코노미스트들은 수요측면보다 비용
측면에서의 인플레 압력을 더 걱정하고 있다.

우선 국제유가의 급등이 가장 큰 위협요인이다.

두바이산 원유는 요즘 배럴당 21달러선으로 작년말에 비해 10달러 이상
인상됐다.

전문가들은 최소한 내년 1.4분기까지는 국제유가가 이 수준 이하로 내려
가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원유 외에 다른 1차상품의 선물시세도 꾸준히 상승, 작년말에 비해 10%가량
비싸졌다.

외환위기 이후 크게 떨어졌던 임금도 올들어 빠른 속도로 상승, 물가에
압박요인이 되고 있다.

제조업체의 경우 임금상승률이 12%에 달해 이미 생산원가 인상요인으로
쌓이기 시작했다.

임금상승은 수요측면에서의 물가상승요인도 되므로 이중의 상승압력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코노미스트 중에는 "무작정 임금상승을 억제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며 생산성 향상으로 상쇄하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도 많다.

국제환율의 움직임도 내년의 인플레에 중요 변수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엔화가 10% 절상될 경우 국내 소비자물가는
0.17%포인트 상승요인이 발생한다.

자본재수입의 대일의존도가 높아 기업의 생산비용으로 전가되기 때문이다.

<> 인플레 대책의 제약 =이코노미스트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인플레
압력에 적절히 대응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경제정책의 제약 요인이 많기 때문이다.

대우사태와 투신사 구조조정 문제를 감안할 때 통화고삐를 조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만약 무리하게 통화긴축을 시도했다가는 국민경제에 더 큰 비용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

재정지출 역시 규모를 줄이기는 시기상조다.

금융구조조정을 마무리 짓고 실업대책을 추진하려면 당분간 재정지출
확대를 감수해야 할 상황이다.

인플레 대책을 두고 그 어느때보다 의견이 분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국정감사장에서는 같은 당 의원들간에도 선제적 통화긴축 필요성을
두고 팽팽히 의견이 맞서기도 했다.

이와관련 KDI는 이번 전망에서 "대우사태 등을 감안, 단기적으로는 신축성
을 유지하되 중기적인 인플레 압력을 발생을 지속적으로 제어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는 쉽게 표현하면 현재의 통화기조를 유지해 가면서 인플레 기대심리
억제에 주력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 임혁 기자 limhyuc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