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 가을 어느날.

오늘은 모처럼 K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다.

그의 두 아들과 두 며느리, 네 명의 손자 손녀가 그의 집으로 오기로 돼
있다.

같은 서울에 살아도 1년에 서너 번 있을까 말까한 날인 것이다.

작년 추석 때는 둘째 아들이 해외 출장 중이어서 한자리에 다 모이지
못했다.

그렇다고 추석날 아침 차례에까지 둘째 아들이 빠진 것은 아니었다.

프랑크푸르트에 나가 있던 둘째 아들은 그곳 호텔 객실에서 이쪽 본가와
화상으로 연결한 차례상 앞에서 차례를 지냈다.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객실 반대쪽 벽면에 자신의 휴대용 컴퓨터를 놓고 서울 본가와 화상전화선만
연결하면 차례 지낼 준비를 마친 이쪽 그의 집 거실 풍경이 컴퓨터를 놓은 쪽
반대 벽면에 그대로 떠오르는 것이다.

20년 전쯤 얼굴을 마주보며 통화하는 가정용 화상 전화기가 음성만 주고받던
무화면 전화기의 수보다 더 많아진 다음 이제 그런 정도의 응용은 어려운
일도 아니게 된 것이었다.

몇년 전 큰 아들 가족이 LA에 나가 있을 때 설날 세배를 그렇게 받은 적이
있었다.

"아버님, 절 받으세요" 큰 아들과 며느리가 말하고 "할아버지, 절 받으세요"
하고 아직 어린 손주와 손녀가 말했다.

그때 그는 자신의 집 안방에 아내와 함께 앉아서 멀리 해외에 나가 있는
아들 가족의 세배를 화상 스크린으로 받았다.

조금은 씁쓸한 기분이었던 것은 아직 살아서까지 이런 식으로 세배를 받아야
하나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씁쓸하게 여길 일도 아니었다.

그 두 아들이 어렸던 자신의 젊은 시절 그도 자신의 조상들에게 그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차례를 지내곤 했던 것이다.

올해 일흔세 살인 그는 자신이 아직 실버타운으로 갈 나이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7, 8년 후에나 생각해 볼 일이었다.

30년 전만 해도 실버타운 하면 양로원 같은 인상부터 받곤 했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젊은 시절 자신이 늘 꿈꾸던 휴양지에서의 생활 같은 것이 바로
실버타운이었다.

경제적 여건만 허락된다면 오히려 많은 노인들이 그곳에 들어오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은 가정용 주택에서 아내와 함께 살고 싶었다.

아내와 함께 옛날과 같은 방식으로 작은 텃밭도 가꾸고 또 이곳저곳 쇼핑도
다니고 또 그렇게 시장을 봐온 것들로 자신들이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살고 싶었던 것이다.

젊은 한때 그는 케이블TV 쇼핑 채널의 PD로 일했었다.

이 땅에 처음 그것이 시작된 것이 30여년 전의 일이었고 15년 전까지도 그는
그 방면의 한 부서 책임자로 일했다.

그가 처음 그 채널의 현역 PD로 일하던 시절만 해도 그것은 무척 낯설고도
새로운 방식의 쇼핑이었다.

그가 아주 어렸던 시절만 해도 모든 물건을 가게에 나가 직접 사야 했다.

장난감 총에 쓰는 화약도 그렇게 사고 구슬도 풍선도 그렇게 샀다.

그것도 자신이 가게에서 무얼 고르는 것이 아니라 무얼 주세요, 이것
주세요, 할 때마다 가게 주인이 그걸 일일이 찾아 내주곤 했다.

그러다 그가 열몇 살쯤 되었을 때 서대문 어딘가에 "슈퍼마켓"이라는 것이
처음 생겼다.

그때 그는 어머니를 따라 버스를 타고 그 슈퍼마켓이라는 곳엘 가 보았다.

얼마 전 대통령도 부인과 함께 그 슈퍼마켓에 들러 이런 저런 물건을
사갔다고 했다.

그걸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동네 극장 "대한뉴스"에도 그 가게와 거기에
물건을 사러 온 대통령 내외 이야기가 영화 뉴스로까지 만들어져 나온
것이었다.

지난 세기 60년대 후반의 일이었다.

거기에 비하면 물건을 사고 파는 방식이 변해도 아주 빠르게 변한 것이었다.

슈퍼마켓이 등장한 지 30년도 되지 않아 케이블TV의 쇼핑 채널을 통해
물건을 소개하고 주문하는 일을 그가 했으며 지금은 그 방식이 더욱
세밀해지고 다양해진 것이었다.

무슨 무슨 "마트"라는 이름을 단 대형 할인 매장과 도시 외곽에 거대한
주차장까지 완비한 쇼핑몰이 등장한 것도 지난 세기 90년대의 일이었다.

그러기 바로 전 5년동안 신문들은 "해외 유통업체들이 몰려온다"는 제목을
심심찮게 경제면 톱으로 뽑아올리곤 했다.

생산보다 유통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될 거라고 매스컴마다 강조하곤 했다.

제품 원가에서 물류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외국에 비해 너무 높다는 기사
역시 심심찮게 그 지면을 차지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 역시 달라졌다.

배추 얘기는 아니지만 며칠 전 그의 아내가 입맛이 없다며 생선회를 먹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각 가정마다 연결돼 있는 화상 정보 시스템을 작동시켜 집앞의 대형
마트로 코드를 연결해 수족관을 찾았다.

그러자 거실 전면 벽면 가득 바다속과도 같은 수족관의 모습이 보이고 그는
그중 날렵하게 수족관 안을 헤엄치고 있는 광어 한 마리의 뒤를 따라가
컴퓨터 마우스로 클릭했다.

그건 과일이나 다른 야채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방식으로 주문해 직접 배달을 부탁할 수도 있고 먼저 주문한 다음
나중에 자동차를 몰고 가게로 나가 그것을 가져올 수도 있다.

공산품 역시 30년 전처럼 대형 매장을 도시 외곽에 실제로 세워놓고 그것을
운영하는 업체들이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화면에 실제 매장처럼 보이는 것은 사이버 세계의 가상공간이었다.

그 가상공간을 수족관의 물고기처럼 헤엄치며 이 물건 저 물건 골라가면서
컴퓨터 마우스로 클릭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산 물건들의 계산 역시 예전의 플라스틱 머니(신용카드)처럼
인터넷 뱅크의 전자머니로 계산하면 되었다.

서울에서 소매치기가 사라진 것도 바로 푼돈 외엔 일체의 현금이 필요없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모처럼 가족들이 모이는 오늘도 그는 아내와 함께 그런 방식으로 시장을 봐
놓았다.

그러나 물품의 그런 유통구조와 쇼핑에 대해 불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예전처럼 옷을 사든 과일을 사든 손으로 직접 만져보고 그 감촉을 느끼는
맛이 없어진 것이었다.

물론 그런 "손맛" 취향의 소비자를 위한 실제 매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벌써 문밖에 아이들이 온 것 같다.

앞으로 이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또 어떻게 변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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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이순원씨 약력 ]

<> 소설가
<> 강원대 경영학과 졸업
<> 88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수상
<> "미혼에게 바친다" "아들과 함께 걷는길" 등 작품 다수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