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 < 작가 / 웹마스터 >

현재 PC통신과 인터넷에 매장을 열고 있는 몇몇 전자서점들에서 전자책을
종이책처럼 판매하고 있다.

종이책과 전자책의 판매 방식에는 차이가 난다.

파일 형태인 전자책은 배송 과정이 필요 없이 직접 다운로드 받아 자신의
컴퓨터에 저장한 뒤 모니터로 읽거나 인터넷상에서 바로 읽을 수 있다.

신용카드 결제까지 가능하다.

인터넷 상거래의 가장 큰 걸림돌인 배송 등에 따른 물류비가 거의 없다는
점, 실시간 거래가 가능하다는 점, 하자 보수나 교환이 즉각적으로 이뤄
진다는 점 등 전자책이 가지는 이점은 열거하기 힘들 정도이다.

이 점이 초기 단계의 전자책으로도 정보통신 분야의 주목을 받는 이유이다.

그러나 현 단계의 전자책은 하드웨어적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사실 디지털화된 활자의 장점은 고정되고 개별적인 의미를 지시하는 활자에
유동적이고 포괄적인 의미를 부여한다는데 있다.

어떤 책의 문장 속에 들어 있는 단어는 어떠한 사물이나 의미나 이미지만을
지시한다.

종이 위에 기록되었던 기존 활자의 의미는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에 달려
있다.

그러나 디지털화되고 데이터베이스화된 후 활자는 똑같은 모양과 의미를
가진, 다른 활자와 너무도 쉽게 비교된다.

예를 들어, 선별해서 뽑은 책 1백 권에서 "1999년 10월 1일"을 찾아본다고
하자.

종이책 한 권의 10페이지를 뒤적이기도 전에 전자책 1백권은 이미 검색이
완료된 상태일 것이다.

"1999년 10월 1일"을 포함하고 있는 문서 중에서 특히 관심을 가진 부분,
"활자의 미래"에 대해서도 몇 초안에 검색이 가능하다.

이런 식으로 "활자의 미래"를 포함하고 있는 문장 속에서 여러 분야 사람들
의 의견을 파악하게 된다.

이때 검색에 사용된 "1999년 10월 1일 활자의 미래"라는 말은 같은 단어
지만 서로 다른 뜻으로 쓰인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활자의 디지털화는 궁극적으로 데이터베이스화가 목표이다.

데이터베이스화가 이뤄지지 않는 디지털화는 기존 활자와 표현 방식만
다를뿐 별 차이가 없다.

활자는 데이터베이스화를 통해 단순히 대상을 지시하는 종속적인 존재에서
의견을 말하는 주체적인 존재로 탈바꿈한다.

사람의 입과 생각을 통해서가 아니라 검색된 활자 자체가 비교하고 분석
하고 의견을 제시한다.

어느 누구보다 활자가 제시하는 정보는 객관적이고 정확하다.

바로 이 때문에 대기업이나 관공서에서 문서를 디지털화하는데 막대한
비용과 인력을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활자의 르네상스가 도래하고 있다.

< windia@gboat.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