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정책의견서 돼버린 '모범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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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여의도 증권거래소 대회의실.
2백여석을 가득 메운 방청객들이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말해준다.
토론자들도 방청석의 열기를 의식한 듯 처음부터 직설적이고 공격적이다.
"모범규준 대로라면 사외이사는 재벌총수의 들러리 밖에 안됩니다"
"막강해진 감사위원회는 누가 감독하는 겁니까"
기업지배구조를 뜯어 고치는 방식을 놓고 재계와 시민단체간에 격론이
벌어졌다.
재계측 토론자들은 지난달 기업지배구조개선위원회가 내놓은 모범규준이
지배주주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주장을 폈다.
특히 사외이사 중심의 이사회, 이사후보 추천권 사외이사에 위임,
집중투표제 도입여부 공시, 감사위원회 의무적 도입 등이 대표적 불만사항
이었다.
재계에는 지금껏 누려온 모든 특권을 내놓으라는 협박에 다름 아니다.
필사적으로 반대논리를 펼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시민단체도 모범규준이 못마땅한 것은 마찬가지.
작년에 도입한 집중투표제가 유야무야된 경험이 있어서다.
여태껏 지배주주로부터 "지배" 받아온 설움을 한꺼번에 해소하려는 듯
원색적 표현도 마다하지 않는다.
"사외이사의 역할은 사기꾼정신과 노름꾼정신을 막아내는 것입니다"
사실 시민단체와 재계가 모범규준안을 놓고 이처럼 대립할 필요는 없다.
지배구조 모범규준이란 말 그대로 기업에 대해 권고하는 "모범교과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범규준을 도입할 지 여부는 기업이 자체적으로 판단해서 결정하면
된다.
그러나 우리의 모범규준은 기업자율에 맡겨 놓지 않는데 문제가 있다.
정부에서 대부분 법령에 반영할 것이기 때문이다.
법령에 반영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모범규준을 도입하지 않으면 각종 불이익
을 가해 시장에서 "왕따"를 당하도록 만든다.
공청회에 참석한 한 토론자는 개선위원회가 만든 안이 모델이 되는 기준이
아니라 "정책의견서"라며 불만을 빗대어 표시했다.
모범규준이 목표로 삼는 기업가치 극대화는 기업의 모든 이해관계자가
지배구조에 대해 자발적으로 합의할 때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정부의 보이지 않는 압력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추진되고 있는 지배구조
개선작업이 과연 성공할 지 염려하는 것은 기우일까.
< 김병일 경제부 기자 kbi@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9일자 ).
2백여석을 가득 메운 방청객들이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말해준다.
토론자들도 방청석의 열기를 의식한 듯 처음부터 직설적이고 공격적이다.
"모범규준 대로라면 사외이사는 재벌총수의 들러리 밖에 안됩니다"
"막강해진 감사위원회는 누가 감독하는 겁니까"
기업지배구조를 뜯어 고치는 방식을 놓고 재계와 시민단체간에 격론이
벌어졌다.
재계측 토론자들은 지난달 기업지배구조개선위원회가 내놓은 모범규준이
지배주주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주장을 폈다.
특히 사외이사 중심의 이사회, 이사후보 추천권 사외이사에 위임,
집중투표제 도입여부 공시, 감사위원회 의무적 도입 등이 대표적 불만사항
이었다.
재계에는 지금껏 누려온 모든 특권을 내놓으라는 협박에 다름 아니다.
필사적으로 반대논리를 펼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시민단체도 모범규준이 못마땅한 것은 마찬가지.
작년에 도입한 집중투표제가 유야무야된 경험이 있어서다.
여태껏 지배주주로부터 "지배" 받아온 설움을 한꺼번에 해소하려는 듯
원색적 표현도 마다하지 않는다.
"사외이사의 역할은 사기꾼정신과 노름꾼정신을 막아내는 것입니다"
사실 시민단체와 재계가 모범규준안을 놓고 이처럼 대립할 필요는 없다.
지배구조 모범규준이란 말 그대로 기업에 대해 권고하는 "모범교과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범규준을 도입할 지 여부는 기업이 자체적으로 판단해서 결정하면
된다.
그러나 우리의 모범규준은 기업자율에 맡겨 놓지 않는데 문제가 있다.
정부에서 대부분 법령에 반영할 것이기 때문이다.
법령에 반영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모범규준을 도입하지 않으면 각종 불이익
을 가해 시장에서 "왕따"를 당하도록 만든다.
공청회에 참석한 한 토론자는 개선위원회가 만든 안이 모델이 되는 기준이
아니라 "정책의견서"라며 불만을 빗대어 표시했다.
모범규준이 목표로 삼는 기업가치 극대화는 기업의 모든 이해관계자가
지배구조에 대해 자발적으로 합의할 때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정부의 보이지 않는 압력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추진되고 있는 지배구조
개선작업이 과연 성공할 지 염려하는 것은 기우일까.
< 김병일 경제부 기자 kbi@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