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떨고 있다.

새로운 자산건전성 분류, 대우사태 등으로 인해 내년초 대대적인 공적자금
투입(2차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당초 올해 영업이익과 유상증자, 해외DR(주식예탁증서) 발행 등으로
은행들이 충격을 흡수할 것으로 봤다.

공적자금 투입부담은 크지 않다는 예상이었다.

하지만 대우사태후 은행주가가 30%이상 곤두박질치면서 모든 구도가
헝클어졌다.

금감위는 도대체 얼마나 쏟아부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지방은행의 주가는 액면가(5천원)를 밑돈지 오래다.

한빛은행과 해외DR 발행을 추진중인 외환은행은 액면가(5천원)를 간신히
웃돈다.

현재 주가로는 증자나 DR 발행은 물건너 갔다는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주가가 1만원은 돼야 증자나 DR 발행의 효과가 난다"며
은행 스스로의 자본확충이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메릴린치는 하반기중 주요은행들의 적자 가능성을 예상했다.

이는 은행을 살리는 부담이 고스란히 정부몫(국민세금)으로 떠넘겨지는
것을 뜻한다.

은행 관계자는 "헐값매각이라고 비난받던 국민 주택 한빛 등의 외자유치가
오히려 "잘한 일"이 됐다"고 지적했다.

당장 이달말과 내달말 DR를 발행할 예정인 외환, 조흥은행은 한빛은행을
부러워하는 처지다.

금감위는 올해말 새로운 자산건전성 분류기준을 적용할 경우 9조~10조원의
대손충당금을 추가로 쌓아야 할 것으로 추산했다.

대우사태의 진전상황에 따라선 훨씬 커질수도 있다.

은행들은 상반기 2조8천억원의 이익(제일.서울은행 제외)을 냈다.

하지만 하반기에 이익을 낼 수 있는 은행이 몇개 안될 것이란 전망이다.

국내 일반은행수는 작년초 26개에서 합병, 퇴출로 현재 18개로 줄었다.

강원은행이 곧 조흥은행에 합병되면 17개가 된다.

내년에 가면 이중 상당수가 간판을 내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은행장부터 말단 창구직원까지 작년의 악몽을 떠올리고 있다.

은행들은 그동안 인력 4만명(34.8%), 점포수 1천2백개(19.6%)를 줄였다.

은행원들은 "때를 밀다못해 이젠 살갗이 벗겨질 지경"이라고 하소연한다.

금감위는 공적자금을 넣고 은행에 자구노력을 요구하더라도 인력감축은
가급적 배제한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합병열풍이 불면 감원이 불가피할 수 밖에 없다.

정부는 지금까지 은행권에 38조원의 공적자금을 쏟아부었다.

내년초 얼마나 더 들어갈지, 현재 12조9천억원 남은 재원을 얼마나 더
늘려야 할지 머리를 싸매고 있다.

이같은 논의를 대우 등 현안에 밀려 제대로 공론화하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 오형규 기자 oh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