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국제 돈세탁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러시아 마피아 자금에 이어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자금 세탁설까지
겹치면서 또다른 세계금융위기의 싹이 웃자랄 조짐을 보이고 있다.

통상적으로 국제 돈세탁은 조세피난처(tax haven)에 세워진 유령회사(paper
company)를 통해 이루워진다.

소위 검은 돈이라고 불리워지는 자금들이 이 회사를 통하면 합법적인 자금
으로 변신한다.

조세피난처는 세금이 전혀 부과되지 않는다.

간단한 절차만 거치면 회사설립도 자유롭다.

물론 금융이나 외환업무에 대한 규제는 거의 없다.

현재 캐리브해 연안, 보르네오섬 동북단, 아일랜드 연안지역을 세계 3대
조세피난처로 꼽고 있다.

거래대금을 기준으로 런던,뉴 욕 등에 이어 세계 5대 금융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규모가 작긴 하지만 이번에 문제가 된 은행을 통해 돈세탁이 이뤄진다.

지난해 하반기까지는 유럽은행이 주요 창구역할을 했으나 스위스 은행의
비밀보장에 문제가 생기면서 최근 들어서는 미국은행들도 자주 이용되고
있다.

대개 검은 돈은 마피아 자금이나 마약거래 대금, 도피성 자금이 주류를
이룬다.

여기에 개도국들의 각종 관급공사와 관련된 리베이트 자금도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다.

최근 들어서는 다국적 기업이나 부유층들의 조세회피용 자금들도 부쩍
늘어나고 있다.

반면에 검은 돈을 이용하는 사람은 역시 이 자금을 공급하는 사람들이
주류를 차지한다.

그만큼 자전거래가 많다는 의미다.

눈길을 끄는 것은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대외신용을 잃은 개도국의 다국적
기업들이 이 자금의 애용자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외자를 무조건 반겼었다.

이때 이 지역을 통한 국내기업들의 변칙성 외자유입을 외국인 직접투자에
반영하여 몇 배가 증가했느니 하면서 홍보용 자료까지 발표하는 웃지 못할
촌극도 있었다.

국제적으로 검은 돈이 거래가 되려면 철저한 비빌보장이 생명이다.

한 마디로 자금의 출처나 사용처에 대해서는 "묻지마" 거래인 것이다.

물론 아킬레스건인 비밀보장에 손상이 가면 해당 금융기관이나 금융시장은
곧바로 시장에서 퇴출당한다.

일례로 최근에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국세청(IRS)에 의해 캐리브해 연안
지역의 보안망이 뚫린 적이 있다.

이 사건이 있자 케이만 군도는 철저한 비밀보장을 기하기 위해 모든 금융
거래에 고유번호를 의무적으로 사용토록하는 법률까지 만들었다.

물론 경제적으로 국제 돈세탁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검은 돈이 세탁되면 국제유동성을 보완하면서 세계경제 성장에 기여한다.

현 수준에서 지하경제 규모가 5% 포인트가 양성화되면 세계경제 성장률은
0.6~0.8% 포인트 상승된다는 분석도 있다.

문제는 부정적 효과가 훨씬 크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금융체계의 효율성과 건전한 금융감독 기능을 약화시킨다.

금융시장의 생명인 투명성을 떨어뜨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검은 돈이 거래되려면 철저한 비밀보장이 전제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국제 돈세탁은 형평성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가뜩이나 도덕적 해이현상이 많은 금융거래에서 국제 돈세탁이 늘어나면
세계 빈부격차와 도덕적 상실감, 경제주체들의 근로의욕 저하 등의 부작용이
발생될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제53차 IMF 총회 이후 국제투기자본의 규제방안이 논의
되면서 국제 돈세탁 방지방안도 함께 거론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는 다음달까지 국제 돈세탁 지역의 명단을
발표할 예정이다.

중요한 것은 투명한 국제금융 거래질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세계 각국간의
협력여부가 관건이다.

한쪽에서는 검은 돈의 거래를 차단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검은 돈의 거래를 촉진시켜 국부의 원천으로 삼으려는 국가가 있어서는
국제 돈세탁 문제가 근절되기란 영원히 어려울 것이다.

결국 세계화.국제화가 급진전되어 지구촌 사회가 도래할수록, 국제금융시장
이 안정되려면 그 구성원인 세계 각국들의 협조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해 주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최근처럼 국제관계가 경제실리 추구에 의해 주도되는 시대에 있어서
는 세계 각국간의 협조에 "죄수의 법칙"이 작용한다는 점이다.

이 상황에서 아무리 좋은 국제금융시장 안정화 방안이 모색된다 하더라도
이행상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세계금융위기가 끝났다고 보기에는 여전히
어려운 것이다.

< 한상춘 전문위원 scha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