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캐디를 골프백을 운반해주고 골프채나 닦아주는 경기
보조원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어느 직업이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처음에는 하찮은 일로부터
시작된다.
캐디 역시 처음에는 메리여왕의 골프시중을 드는데서 시작됐다.
1770께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부근에서 노숙하던 집 없는 부랑소년들이
돈벌이를 위해서 캐디로 나서면서 미로소 직업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그중 몇몇은 머리도 명석하고 골프전략에 뛰어난 자질을 갖고
조언하는 자가 있어 골퍼들이 선호했다.
골프역사에 대업을 이룩한 훌륭한 골퍼들의 뒷얘기를 찾아보면 그들은
한결같이 캐디들을 찬양하고 있다.
좋은 캐디가 없다면 시합에 이길 수 없다.
게임의 융성에 따라 명캐디 찾기가 프로의 과제라고 한다.
캐디도 훌륭한 직업임에 틀림없다.
서울근교 명문 골프장에 근무하는 한 어머니 캐디의 훌륭한 직업정신을
소개한다.
지난 초여름 고서지학의 대가인 분과 함께 라운드를 하면서 그녀의 인생
역정을 들었다.
그녀의 캐디생활은 25년이 넘는다고 한다.
아리따운 처녀시절부터 푸른잔디 위에서 세월을 보내면서 보잘 것 없는
캐디 수고료 수입으로 아들 하나를 훌륭한 국가대표급 골퍼가 되도록
뒷바라지해왔다.
그 어머니의 훌륭한 생활자세를 보고 마음 뭉클함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자기는 다시 태어나도 이 직업을 그대로 갖고싶으나 여기도 구조조정바람이
불어 곧 떠나야 한다면서 매우 안쓰러워하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자기직업에 성실했고 동반자에게 더 없는 조언자로서 나무랄 것이
없는 안목을 갖고 있었다.
필자는 이 어머니 캐디의 정성스러운 서비스 모습을 보고 문득 조지 카네기
라는 시인을 생각했다.
골프매니아였던 그는 이런 명구를 남겼다.
"게임에 임해서 주인도 아니고 종도 아닌 골퍼와 캐디는 한몸과 같은
존재이다"
마치 바늘과 실의 관계와 같음을 비유했다.
1877년부터 브리티시오픈에서 3연승을 위업을 이루고난 후 제이미 앤더슨은
자신의 캐디를 "나는 법원의 판사보다도, 학교의 선생보다도 그의 조언을
믿는다"고 칭찬했다.
이 말은 두고두고 음미해 볼만하다 양자의 관계는 이런 정도로까지
승화된다.
주말 골퍼들도 좋은 캐디를 만나 4~5시간에 걸쳐 18홀을 돌고 나면 기분이
확 풀리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남을 즐겁게 해주고 부담을 주지않으며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고 손님을 대하는 캐디가 많은
골프장이야말로 명문 골프장이 아닐까?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