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이 행패부리는 취객을 단속하다 중상을 입혔다면 법원은 경관에게
과잉대응의 책임을 물을 것이다.

경관은 공공복리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지만 공무수행을 빌미로 국민의
신체나 재산에 함부로 위해를 가할 순 없기 때문이다.

취객의 행패는 다른 사안이다.

법과 행정 사이엔 이런 차이가 있다.

대한생명을 둘러싼 금융감독위원회와 최순영 회장측의 싸움이 당초 금감위의
일방적인 우세란 예상을 뒤엎고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금감위는 초반 세번의 싸움(가처분신청)중 두번을 졌다.

대생을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하지 못했고 파나콤의 5백억원 증자참여
계획을 막지도 못했다.

행정법원이 금감위 조치(부실금융기관 지정 등)의 효력여부를 판가름하는
일만 남았다.

금감위가 여기에서도 지면 본안소송은 차치하고 그동안 정부주도의
구조조정을 원론부터 재검토해야할 처지다.

정부의 "전가의 보도"인 금융산업구조개선법도 위헌시비에 말려들 공산이
크다.

이처럼 파장이 엄청난 데도 법원이 판단에 신중을 기하는 것은 공익과
사유재산권 사이의 함수관계를 놓고 고심하는 탓으로 보인다.

최 회장은 회사자금을 빼돌리고 연고대출로 회사를 부실하게 만든
"부도덕한 대주주"이고 "실패한 경영인"으로 알려져있다.

그래도 공익을 위해 무조건 사유재산을 제한해도 된다는 식의 사회적감정이
법적 정당성을 얻는 것은 아니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된데는 금감위가 두가지 오류를 범했다는 지적이다.

첫째 공개입찰에 앞서 대한생명을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하지 않은 절차상의
하자이고 둘째는 최회장측의 항변을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쯤으로
축소해석한 점이다.

대한생명의 부실(자산부족액) 2조7천억원을 지금 당장 해결하기도 어렵지만
처리가 늦어질수록 사회적 비용은 더 커진다.

정부는 다른 부실금융기관 대주주에겐 손실배상까지 묻고 있다.

법원이 최회장측 손을 들어주고 대한생명이 독자생존의 길로 간다면
형평시비를 넘어 집단 소송을 초래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정부가 IMF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초법적인 조치를 취해도 크게 문제되지
않은 것은 국민적 합의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조조정을 매듭짓기 전에 공익을 위해 사유재산을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는지 한번쯤 짚어봤어야 했다.

이런 되새김의 계기가 옷로비에다 외화유출, 부실대출 등의 모태가 된
대한생명에 의해 마련된 점은 유감이다.

< 오형규 경제부 기자 oh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