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저희가 밥을 먹고 살 수 있는 정도인데 돈을 받아서 팔자를
고치겠느냐"
"국민적 의혹을 밝히기 위해서"
23일 열린 국회 법사위 옷로비 청문회의장.
첫 증인으로 나선 강인덕 전 통일장관 부인 배정숙씨는 연거푸 "억울하다"며
똑같은 답변을 계속해야 했다.
때로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문이 막히기도 했다.
급기야 "내 영혼은 살아 있을 지라도 육신은 죽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라고 울먹였다.
죄인의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검찰에 의해 변호사법 위반으로 기소된 배씨를 옹호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날 오전 똑같은 질문을 퍼붓는 여야의원들은 마치 검사가 호령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실제로 검사출신이 많았다.
이에 시달린 배씨는 똑같은 대답만 되풀이해야 하는 "고문"을 당했다.
증언대가 피고인석으로, 증인이 죄인으로 바뀐 꼴이 됐다.
여야의원들은 "라스포사"에서 밍크코트를 입은 날짜와 최순영 신동아 회장
부인 이형자씨에게 옷값대납을 요구했는지 또 이를 둘러싸고 말다툼을 벌였는
지를 집중 추궁했다.
또다른 문제는 대부분 의원들이 질문시간(20분제한)을 넘겨 "증인의 답변"을
듣기보다는 "자신의 주장"을 강조하기에 바빴다는 점이다.
목요상 법사위원장이 "질문요지를 정리해서 중복되는 질문을 피해달라"고
의원들에게 거듭 주문할 정도였다.
헌정사상 청문회가 수차례 열렸지만 이같은 현상은 매번 반복되는 현상이다.
청문회가 아닌 척문회라는 지적도 있었다.
반복되는 질문은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기 위한 진상규명"과는 거리가 멀다.
검사가 취조하는 듯한 의원들의 태도도 증언을 통해 사실을 규명하기보다는
의도적으로 어떤 사실로 이끌어 내려는 듯한 "견강부회"에 불과했다.
물론 배씨는 이날 검찰수사결과에 대해 의혹을 제기할 만한 주장들을 했다.
옷값대납요구사실과 말다툼 사실을 모두 부인, 국민적인 의혹은 더욱
부풀려졌다.
고급 의상실출입은 물론 "나훈아쇼"를 관람했다고 증언, 고관부인들의
호화행태에 대한 국민들의 배신감도 키웠다.
그러나 이날 청문회는 건강이 좋지 않는 배씨에 대한 정신적 고문의 결과
치고는 만족스럽지도 효율적이지도 못했다.
< 최명수 정치부 기자 mes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