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창수 위원장 ]

지난 89년 노동조합이 설립됐을 초기에는 경영진과의 갈등과 마찰이
없지 않았다.

지난 93년 노조위원장으로 선임된 뒤 이래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떻게든지 고쳐야했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가 96년 적자를 냈다.

부산의 신발산업이 무너진 여파가 컸다.

그간 매년 흑자를 기록했던 탓에 전 임직원의 충격은 말할 수도
없었다.

임금협상부터 무교섭으로 끝냈다.

이로 인해 임단협기간의 생산성이 크게 높아졌다.

전사원의 부인까지 초청한 야유회나 체육대회가 자주 열리면서 노사간에
신뢰가 쌓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회사말이라면 부인들이 더 믿고 따를 정도다.

회사가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게 노조의 역할이다.

이를 위해 불량률 제로운동에 나섰고 지난해 계열사에 대한 지급보증
부담으로 주가가 폭락하자 자사주 갖기 운동도 벌였다.

우리 직장은 바로 우리가 지켜야하지 않겠는가.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