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를 선고한 서울지법 형사합의22부는 재판이 끝나자마자 판사실로
직행한 후 한동안 일체의 외부인 접촉을 삼갔다.

검찰과 변호인단이 제시한 증거와 기록을 종합해 오로지 사법적 잣대로
무죄선고를 내렸지만 중압감을 느끼는 모습은 역력했다.

그 중압감은 A4 용지로 무려 1백51쪽에 이르는 판결문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한편으로는 첫 공판부터 선고까지 무려 4백7일간이나 진행됐던 역사적
사건을 끝낸 탓인지 지친 기색이 역력하면서도 후련해 하는 표정이었다.

재판장인 이호원(사시 17회) 부장판사는 선고 직전까지도 "판결문 분량
까지도 정보가 될 수 있다" "법정에서 보자"는 등 극도로 조심스런 모습을
보여 왔다.

선고후에도 "지금으로서는 판결 이외에는 할 말이 없다. 내일 보자"며
배석들과 함께 자리를 피해 접촉을 삼갔다.

이 부장은 충북 청주 출신으로 경기고, 서울법대를 나와 80년 서울동부지원
에서 법관생활을 시작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부산지법 부장판사 등을 역임했으며 5공때인 86년에는
잠시 대통령 비서실에 파견된 경력도 갖고 있다.

지난 봄 정기인사에서 배석 판사들이 모두 바뀌었으나 97년 봄에 맡은
22부 재판장 자리를 그대로 지켜 오는 가을 정기인사때 자리를 옮길 예정
이다.

그는 원칙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지난해 5월 히로뽕 투약 혐의로 기소된 박정희 전대통령의 외아들 지만씨
에게 검찰의 벌금형 구형에도 불구하고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환란사건 재판과정에서도 소환요구에 2차례 불출석한 임창열 경기지사
등에게 여지없이 과태료를 부과했고 증인들에게 신문에 앞서 매번 수사기관
에서의 진술내용을 보여 주며 확인하는 치밀함도 갖췄다.

충남고, 서울대를 나온 우배석 호제훈(사시 34회) 판사는 지난 3월 인사로
환란사건 주심판사가 돼 지난6월 결심이후 2개월동안 휴가도 제대로 가지
못한채 판결문 작성에 고심했다.

좌배석 왕정옥(사시 35회) 판사는 부산 주례여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수원지법 초임판사를 거쳐 역시 지난 3월 22부에 합류한 여판사다.

재판부는 이날 판결 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이번 판결은 어디까지나 1심
결과일 뿐이라며 판결문 외에 달리 할말은 없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한편 이날 재판은 최근 큰 재판이 없었던 법원 판사들에게도 관심을 끌었다.

서울지법의 한 판사는 "직무유기 혐의 무죄는 이전의 대법원 판례로 볼 때
예상된 결과였지만 국민들이나 언론이 이런 사정을 이해해 주지 않고 법원에
화살을 돌릴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판사는 "직권남용 혐의 일부가 유죄판결을 받은데 대해서도 일부
에서는 항소심으로 올라가면 깨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 손성태 기자 mrhand@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