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광하는 군중에 둘러싸여 유세를 벌이는 후지모리 후보를 내가 특파원으로
취재하고 인터뷰했던 것이 1990년이었다.

중간키에 연약한 몸집을 가진 교수 출신의 아마추어 정치인이 과연 극심한
사회혼란과 악성 인플레, 국경분쟁 등 중첩한 난제를 어떻게 수습해 나갈 수
있을지에대해 나는 회의적이었다.

9년이 지난 99년8월16일 대통령궁에서 ''의원친선대표단''의 일원으로 그를
만났을때 우선 많이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름살이 늘고 또 검붉게 탄 입술속에서 눈빛이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93년 그는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의회를 해산시키고 헌법을 정지시키는
비상조치를 취했다.

게릴라를 소탕하고 인플레를 잡으며 에콰도르와의 국경분쟁을 타결지었다.

와이셔츠 소매를 걷고 도시 빈민촌과 산간의 인디오 부락을 출몰하듯
누볐다.

또 몇년전 일본대사관 인질사건 때에는 방탄조끼를 입고 진두지휘하던 그의
''강단''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잘 이해가되지 않을 정도다.

후지모리는 경제개방과 공공개혁, 외자유치를 강력히 추진하고 있으나
장애물이 적지 않은 형편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페루의 고민은 중산층이 거의 없다는데 있다.

2천6백만 인구의 13%에 불과한 백인이 부의 73%를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메스티조와 인디오 등이 하류계층을 구성하는 극심한 양극화 속에서
중산층은 보이지 않는다.

페루 뿐만이 아니라 중산층이 없는 나라는 국민통합이 어려우며 사회 안정이
힘들고 내수시장이 돌지 않는다.

페루의 교훈은 우리의 경제회복 노력이 결국 중산층 재건과 확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역시 소중한 것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다.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평화적 정권교체에 성공함으로써 ''제2 한강의 기적''
을 이룬 우리나라가 재벌개혁을 핵심으로 한 경제회생에 성공한다면 우리
민족은 세계 사회에 당당하게 가슴을 내밀게 될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