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전 대한변호사협회(회장 김창국)가 대법원장 후보를 추천하겠다고
나섰을 때 이를 보는 시각은 엇갈렸다.

흔한 말로 "신선한 충격"이라는 평가도 있었던 반면 변협이 대법원의
압력을 극복하고 "거사"를 성사시킬수 있을까라는 회의론도 있었다.

당사자인 대법원에서는 "주제넘은 행위"라며 일부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세는 일과성으로 간주하는 분위기였다.

이 때문에 대한변협이 지난 3월 원로변호사 15명으로 사법평가위원회를
구성하고 후보분석을 위한 실무위원회를 출범시켰을 때까지도 변협의
움직임은 아직 여론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러나 대법원의 무사태평과 달리 후보추천 문제는 날이 갈수록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권위의 상징인 대법원장을 이해 관계자들만의 밀실 인선을 통해서가 아니라
제3자가, 그것도 공론화라는 과정을 거쳐 선출해보겠다는 것은 분명 국민의
정부에 걸맞은 시대적 변화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즉각 여론의 급류를 탔다.

대법원이 반대의견과 반박문을 낼 정도로 사태는 급진전됐다.

변협은 그러나 결국 많은 이의 기대를 배반하고 말았다.

대법원측의 반격을 우려해서인지 18일 아무런 공개과정없이 "밀실"에서
후보자를 추려 대통령에게 추천해버린 것이다.

변협은 나름대로 엄선했다고 큰소리치고 있다.

하지만 후보 공론화를 원했던 국민의 입장에서 변협의 추천방식은 역대정권
의 밀실인선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후보공개가 명예훼손의 여지가 있어서"라는 변협의 설명은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대법원장을 밀실에서 뽑는 것은 민주주의의 원리에 반한다"며 입에 거품을
물었던 게 변협이었다.

또 후보자명단과 평가내용을 공개하겠다고 공언했던 게 변협이었다.

그런데도 지난 16일 마지막 회의에서는 한술 더 떠 "무덤까지 후보명단을
가져가자"며 비밀유지를 결의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권위주의 시대와 뭐가 달라졌단 말인가.

오히려 변협은 자기들의 이익에 가장 충실할 수 있는 인사를 추천했다고
해도 반박의 여지가 없는 것 아닌가.

변협은 변화를 기대했던 많은 이들에게 "한국 법조인의 한계"만 새삼
확인시켜줬을 뿐이다.

기대가 없었다면 실망도 이처럼 크지 않았을 것이다.

< 고기완 사회1부 기자 dadad@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