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가 그토록 정교하게 설계됐다면 몸 안에 질병을 유발하는 인자는 왜
들어있는가.

대기오염이 심한 영국나방의 날개 색깔이 어두워진 이유는 무엇인가.

다윈의학의 창시자 랜덜프 네스와 진화생물학자 조지 윌리엄즈가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두사람은 공동저서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사이언스북스, 1만3천원)
에서 인간질병과 진화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이들은 인간의 몸이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오랜 진화를 거쳐 만들어졌기
때문에 질병도 기름을 치거나 부속만 갈면 해결되는 기계고장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본다.

현대병은 기름기 많은 음식이나 산업기계 마약 인공조명 등에 적응할
여유를 갖지 못해 생긴 부작용이라는 것이다.

심장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는 기름진 음식을 먹기 전에는 대부분 해롭지
않았고 근시유발 유전자도 문명사회 이전에는 거의 문제되지 않았다고 한다.

한마디로 질병은 인체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인체를 자연선택의 산물로 파악할 때 질병의 원인과 치유법도 더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것이 인간질병의 원인을 진화적 관점에서 살핀 "다윈의학"의 요체다.

저자들은 인문사회과학뿐 아니라 예술분야까지 진화론을 원용하는 마당에
의학계만 유독 이를 외면하고 있다며 이를 적극 활용하자고 제안한다.

이들은 영국나방의 날개색 변화도 자연선택의 한 과정으로 설명한다.

매연으로 거무튀튀하게 변한 나뭇가지에서 적으로부터 자신을 잘 보호하려면
어두운 색깔의 유전자를 늘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병원균과 숙주 세균, 유독성과 기생체, 자연환경의 독소와 진화적 적응관계,
공업사회 이후 급격히 증가한 알레르기의 원인과 암세포에 대응하는 인체의
움직임도 다윈의학으로 명쾌하게 분석했다.

번역자인 최재천 서울대 생물학과 교수는 "각종 질병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접근하면 현재 사용중인 처방 중 상당수가 불필요하거나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며 "다윈의학은 현대의학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