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중앙부처 핵심 보직의 20%에 해당하는 1백50개 자리를 민간인에게
개방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민간 컨설팅회사가 정부의 경영실태를 진단해 개방할 보직을 이미 선정했고,
중앙인사위원회는 이를 토대로 각 부처와 협의해 오는 9월까지 확정할
예정이다.

철밥통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공직사회에 민간과의 경쟁을 도입해 행정의
효율을 높이고 공직사회를 쇄신하겠다는 의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정부의 이런 의욕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새로운 제도로 인해 빚어질
여러가지 현실적인 문제들을 도외시했다는 점에서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공무원에 대한 신분보장이 훼손됨으로써 사기가 떨어지는 문제는 물론
정치판이 공무원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등의 부작용들을 너무 가볍게
다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부 서방국가에서 공직개방의 장점을 활용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 사회적 여건이나 관행을 비교할 때 우리 풍토에서 제대로
뿌리내리기를 장담할 수는 없다.

그동안 수없이 치러진 각종 선거에서 공무원의 중립이 그런대로 잘 지켜진
것은 바로 그들에 대한 신분보장의 덕이었다.

그러나 공직개방은 신분보장을 훼손함으로써 정치적 중립까지 무너뜨릴
것이 분명하고 결과적으로 정치발전에도 크나큰 해를 끼치게 된다.

여권 주변의 인물들이 연줄을 타고 공직에 진출하는 엽관제도로 타락할
가능성도 크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재고용을 위해 정치권에 줄을 대려는 경향 역시 두드러질
것이 뻔하다.

정치적 중립성은 물론이고 전문성과 안정성까지 무너질 위험이 너무나 크다.

이론에는 밝지만 행정에는 미숙한 전문가들이나 이름만 팔린 유명인사들만
득세할 수도 있다.

더구나 채용의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할 행정능력이나 조직장악력은
객관적으로 검증하기조차 어렵다.

국민의 정부에서 기획예산위원회가 출범하며 의욕적으로 고용한 민간인
전문가 가운데 상당수가 공직을 떠났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개인이력을 쌓기 위해 잠간 공직을 이용하려 한다는 기존 공무원들의 주장과
철밥통 풍토에서는 개혁의지를 펼 여지가 없다는 민간인들의 비판에 다
일리가 있다.

늘 관변을 기웃거리는 3류 학자들도 적지 않다.

하루 아침에 고위 공직에 낙점된 민간인사의 행태가 기존 공무원들의
부정적인 측면을 뺨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공직사회를 개혁하는 일은 필수적인 과제이다.

그러나 민간이라고 모두 지고지선은 아니다.

공직개방은 결코 서두를 일이 아니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보다 더 완벽하게 다듬어야
한다.

서두르면 실패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