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세가 국민의 본분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면서도 늘 국가로부터 세금에 상응하는 이득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게 국민이다.

그것은 아마 국민의 땀으로 지불된 세금이 항상 국민을 위해 쓰인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기 때문인것 같다.

"가능한 한 아무런 잡음없이 필요로 하는 최대량의 깃털을 오리에게서
뜯어 내는 것이 과세의 기술"이란 17세기 프랑스 정치가 콜베르의 말이
요즘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인지 세금은 지금도 여전히 국민에게는 무거운
짐처럼 인식돼 있다.

특히 세금은 징수하는 길을 알면 빠져 나가는 길도 알 수 있게 마련이어서
그 방법을 알고 있는 세리부정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

경찰관보다 세금징수관이 더 무섭다는 말도 그래서 생겼다.

몇년전 쥐처럼 몰래 세금을 갉아 먹어치운 세도들이 그런 부류에 속한다.

그럴때마다 "고무줄 세법"을 개정해야 한다느니, "내부자 고발보호법"을
만들자느니, 사조직을 없애야 한다느니 하는 주장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납세자 입장에서 보면 과세는 여전히 불공평하고 세리들은 여전히
깨끗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하기야 예수도 부자와 세리는 천당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했다니 징세자와
납세자의 관계는 예부터 운명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국세청이 일제때부터 써온 "세무서"란 명칭이 위압적이라 해서 바꾸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명칭을 공모한 결과 "국세지원센터" "구실원" "자금성" "나눔터" "세누리원"
"세문지기" 등 기발한 명칭 400여건이 접수됐다는 소식이다.

정권이 바뀔때마다 개혁의 상징이나 되는 것처럼 서너번씩 이름을 고쳐온
현재의 기무사나 안기부 여.야 정당들이 옛날과 달라진 것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앞선다.

명칭의 상징성을 너무 신비화시키면 소위 "명칭에 대한 미신"만 생겨나게
된다.

옛말에 "이름은 그 사물의 성징을 나타낸다(명전백성)"고 했다.

명실상부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름을 바꿀 것이 아니라 공평하게 과세하고 빠짐없이 거둬들인다면 탈세자
가 아닌 바에야 ''세무서''라는 이름을 위압적으로 느낄 사람은 없을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