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인 코리아] '한국네슬레' .. '멀리보고 투자'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 본사 = 스위스 베베이
<> 한국진출 = 79년7월 합작회사인 한서식품 설립
<> 87년10월 = 한국네슬레 설립
<> 93년9월 = 한서식품을 한국네슬레에 통합
<> 96년 = 네슬레가 한국측 지분 전부 인수
<> 98년 매출액 = 2천6백30억원
<> 종업원수 = 1천1백여명
<> 공장 소재지 = 청주
-----------------------------------------------------------------------
한국네슬레는 답답할 정도로 고집스러운 기업이다.
지름길이 뻔히 보이는데도 멀리 돌아가곤 한다.
지름길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다.
알면서도 그렇게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이유식 쎄레락을 꼽을 수 있다.
이 회사는 쎄레락에 들어가는 곡물 알갱이를 잘게 부수기만 했다면 이유식의
시장점유율을 대폭 높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손쉬운 방법을 거부했다.
알갱이를 잘게 부수지 않은 것은 이유식을 숫가락으로 떠먹이지 않고 젖병에
넣어 빨아먹게 하면 아기의 아래턱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경쟁사들은 알갱이를 잘게 부순 이유식을 발매, 네슬레의 몫까지
야금야금 잠식해버렸다.
한국네슬레측은 스위스 본사에 알갱이를 부수게 해달라고 수차례 건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단호하게 거절당했다.
몇년전에는 이유식시장에 DHA 붐이 일었다.
DHA가 두뇌 발달에 좋다고 알려지자 이유식업체들은 자사제품에 DHA가 들어
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그러나 네슬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본사에서는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사실을 쎄레락 선전에 활용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쎄레락의 사례는 네슬레의 기업문화를 대변해준다.
이윤 못지않게 기업윤리를 중시하는 풍토.이것이야말로 네슬레가 창사후
1백32년이나 건재하고 세계 최대의 식품회사로 성장할 수 있게 해준 원동력
이라고 네슬레측은 설명한다.
물론 한국에서는 기업윤리를 지키려다 단기적으로 손해를 보기도 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투자한다는 것이 네슬레의 기본방침이다.
네슬레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20년전인 지난 79년.농수산물유통공사의
전신인 농어촌개발공사와 50대 50 비율로 합작,한서식품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정부투자기관과 합작한 것은 박정희 전대통령이 선진국 식품업체들의 앞선
기술을 들여오라고 지시했기 때문이었다.
네슬레는 2년뒤인 81년 청주공장을 짓고 쎄레락 마일로 등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판로를 뚫기가 쉽지 않았다.
생활수준이 낮아 도무지 수요가 따라주지 않았다.
이 바람에 네슬레는 밤낮으로 돌려도 시원찮을 공장을 1주일에 2~3일만
가동했다.
직원들은 회사 마당에서 잡초를 뽑거나 강당에 모여 강연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수년째 이런 일이 계속되자 사원들은 네슬레가 철수하지 않을까 우려했다.
그러나 본사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는 멀리 보고 투자한다"는 것이 본사측 답변이었다.
네슬레는 한국에 들어온 지 17년만인 96년에야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했다.
이어 3년 연속 흑자를 냄으로써 한국시장에서 확고한 기반을 다졌다.
그 사이 네슬레의 합작 파트너가 몇차례 바뀌었고 96년엔 파트너 지분을
모두 인수했다.
마침내 한국시장에서 홀로서기에 성공한 셈이다.
네슬레 문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인재를 중시한다는 점이다.
이 회사는 전통적으로 사원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고 믿는다.
한국네슬레는 지난해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도 남는 인력을 한명도
내보내지 않았다.
네슬레 문화를 이해하는 사원이야말로 자산이라고 믿기 때문이었다.
이런 까닭에 80년대말 노조가 설립된 뒤 단 한차례도 분규를 겪지 않았다.
데이브 파커 한국네슬레 사장은 "적절한 인재를 채용해 올바른 조직에서
일하게 하고 제대로 교육훈련을 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일에서 재미를 느끼도록 해줘야 사원들이 회사에 공헌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김광현 기자 kh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12일자 ).
<> 한국진출 = 79년7월 합작회사인 한서식품 설립
<> 87년10월 = 한국네슬레 설립
<> 93년9월 = 한서식품을 한국네슬레에 통합
<> 96년 = 네슬레가 한국측 지분 전부 인수
<> 98년 매출액 = 2천6백30억원
<> 종업원수 = 1천1백여명
<> 공장 소재지 = 청주
-----------------------------------------------------------------------
한국네슬레는 답답할 정도로 고집스러운 기업이다.
지름길이 뻔히 보이는데도 멀리 돌아가곤 한다.
지름길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다.
알면서도 그렇게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이유식 쎄레락을 꼽을 수 있다.
이 회사는 쎄레락에 들어가는 곡물 알갱이를 잘게 부수기만 했다면 이유식의
시장점유율을 대폭 높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손쉬운 방법을 거부했다.
알갱이를 잘게 부수지 않은 것은 이유식을 숫가락으로 떠먹이지 않고 젖병에
넣어 빨아먹게 하면 아기의 아래턱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경쟁사들은 알갱이를 잘게 부순 이유식을 발매, 네슬레의 몫까지
야금야금 잠식해버렸다.
한국네슬레측은 스위스 본사에 알갱이를 부수게 해달라고 수차례 건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단호하게 거절당했다.
몇년전에는 이유식시장에 DHA 붐이 일었다.
DHA가 두뇌 발달에 좋다고 알려지자 이유식업체들은 자사제품에 DHA가 들어
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그러나 네슬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본사에서는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사실을 쎄레락 선전에 활용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쎄레락의 사례는 네슬레의 기업문화를 대변해준다.
이윤 못지않게 기업윤리를 중시하는 풍토.이것이야말로 네슬레가 창사후
1백32년이나 건재하고 세계 최대의 식품회사로 성장할 수 있게 해준 원동력
이라고 네슬레측은 설명한다.
물론 한국에서는 기업윤리를 지키려다 단기적으로 손해를 보기도 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투자한다는 것이 네슬레의 기본방침이다.
네슬레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20년전인 지난 79년.농수산물유통공사의
전신인 농어촌개발공사와 50대 50 비율로 합작,한서식품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정부투자기관과 합작한 것은 박정희 전대통령이 선진국 식품업체들의 앞선
기술을 들여오라고 지시했기 때문이었다.
네슬레는 2년뒤인 81년 청주공장을 짓고 쎄레락 마일로 등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판로를 뚫기가 쉽지 않았다.
생활수준이 낮아 도무지 수요가 따라주지 않았다.
이 바람에 네슬레는 밤낮으로 돌려도 시원찮을 공장을 1주일에 2~3일만
가동했다.
직원들은 회사 마당에서 잡초를 뽑거나 강당에 모여 강연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수년째 이런 일이 계속되자 사원들은 네슬레가 철수하지 않을까 우려했다.
그러나 본사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는 멀리 보고 투자한다"는 것이 본사측 답변이었다.
네슬레는 한국에 들어온 지 17년만인 96년에야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했다.
이어 3년 연속 흑자를 냄으로써 한국시장에서 확고한 기반을 다졌다.
그 사이 네슬레의 합작 파트너가 몇차례 바뀌었고 96년엔 파트너 지분을
모두 인수했다.
마침내 한국시장에서 홀로서기에 성공한 셈이다.
네슬레 문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인재를 중시한다는 점이다.
이 회사는 전통적으로 사원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고 믿는다.
한국네슬레는 지난해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도 남는 인력을 한명도
내보내지 않았다.
네슬레 문화를 이해하는 사원이야말로 자산이라고 믿기 때문이었다.
이런 까닭에 80년대말 노조가 설립된 뒤 단 한차례도 분규를 겪지 않았다.
데이브 파커 한국네슬레 사장은 "적절한 인재를 채용해 올바른 조직에서
일하게 하고 제대로 교육훈련을 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일에서 재미를 느끼도록 해줘야 사원들이 회사에 공헌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김광현 기자 kh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