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민 < 본사 논설위원 >

요 며칠사이 정부의 경제정책 흐름이 크게 변하고 있다.

이를 두고 "생산적 복지"정책의 구체화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고,
"DJ노믹스의 가시화"란 주석을 달기도 한다.

그 핵심에는 정부가 발표한 중산층 육성과 서민생활 안정을 위한 대책이
자리하고 있다.

소득세를 감면해 주고, 과세특례제도를 개선하는 한편 상속.증여세 강화로
부의 세습을 막겠다는 것이 골자다.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달 25일의 월례 기자간담회에서 "IMF사태로 중산층과
서민들이 고통과 희생을 분담했으니 이제는 과실도 같이 나누는 정책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요지의 정책방향을 분명히 밝힌 바 있어 그같은 해석에 전혀
무리는 없다.

더구나 그동안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중산층이 몰락하고 빈부격차가
심화됐다는 지적이 많았다.

때문에 중산층 육성과 서민생활안정 대책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정부 정책은
국민들의 열렬한 박수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요즈음 정부가 쏟아내는 갖가지 정책대안들은 혼란스럽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중산층 육성대책은 물론이고 "금융독식"시정을 위한 대기업 규제강화,
공무원 처우개선, 노조전임자 임금지급방안 논의 등 일련의 정책결정 과정을
보면 불안하기 그지없다.

우선 근검절약의 사회분위기를 정부가 앞장서 파괴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비록 "생산적"이라는 수식어가 붙긴 했지만 "복지"라는 단어는 다소
부담스럽다.

자칫 우리경제가 이제는 허리띠를 풀어도 좋을 만큼 정상궤도에 들어섰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같은 관점에서 우리 경제의 현실을 좀더 냉정하게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외환위기가 초래된 근본원인은 외환부족이라는 표피적 현상보다 금융 및
기업경영의 갖가지 병폐가 어우러진 경제시스템의 구조적 취약성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일반적 진단이었다.

때문에 강도높은 구조조정이 위기극복의 핵심화두였고, 그 최종목표는
금융이건 기업이건 국경없는 무한경쟁 시대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국제경쟁력의 확보였다.

그같은 관점에서 우리 경제는 IMF체제 이전에 비해 크게 달라진게 없고,
분배에 정책의 무게중심을 옮기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중산층 육성과 서민생활보호 대책도 같은 맥락에서 문제가 없지않다.

경기가 예상외로 빠르게 회복돼 세수가 늘어 세금을 깎아주고 재정지출을
늘리겠다는 것이 그 골자다.

그러나 정부예산은 지난해에 이어 금년에도 막대한 적자를 감수하도록
짜여져 있다.

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적자재정의 고착화를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가 이미 밝힌 재정운용의 대원칙이다.

상반되는 정책과제를 어떻게 조화시킬지 궁금하다.

이번 소득세 감면조치는 저소득층보다 고소득층에 더 많은 혜택이 주어지는
효과를 가져온다.

예컨대 현재 월 1백만원을 받는 근로자의 연간 세부담 경감액은 20만원
안팎이지만 연봉 1억원의 고소득자는 연간 3백만원이 넘는 세금경감 혜택을
받게 된다.

저소득층 지원이라는 정책의 명분에 비해 실질적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다.

내년 선거를 겨냥한 선심정책이 아니냐는 시비도 그래서 나오고, 민심을
끌어안기 위한 정치적 국면전환용 대책이라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도 그같은
관점에서다.

특히 최근 들어 대기업들에 대한 개혁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는 것은 순수한
의미의 구조조정 독려라기보다 중산층과 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심리적
으로 보상해 주려는 게 아니냐는 느낌을 준다.

대기업, 특히 재벌그룹의 구조조정이 정부의 기대만큼 원활히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같은 정부시책이 국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것은
정책의 수단과 방법의 선택이 잘못된 때문이 아닌가 싶다.

최근 발표된 일련의 정책들은 느닷없이 나온 대증요법으로 비쳐지고 있다.

중산층 육성을 위한 세제개편도 그렇고, 대기업들에 대한 금융제한 조치와
특정기업에 대한 특별세무조사 실시 등이 그런 예에 속한다.

경제개혁은 어디까지나 제도적 법적 기반을 정비하고 합리적인 수단을
동원해 바람직한 결과를 유도하는 방법으로 추진돼야 한다.

그래야 후유증이 없다.

재벌규제가 중산층 육성대책이 될 수 없고,세금 몇 푼 깎아주는 것이
서민생활보호 대책의 핵심일 수는 없다.

더구나 그것이 민심무마를 위한 선심정책의 수단이어서는 곤란하다.

기업이건 국민이건, 그들에게 "경제"하려는 의지를 되살려주고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비전을 제시해주는 것이 생산적 복지정책의 근본이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경제가 처해 있는 좌표를 좀더 냉정하게 따져 보는
작업부터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다.

그런 연후에 경제정책의 우선순위를 재점검하고 종합대책을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