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구 <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원장 cklee@kitech.re.kr >

최근 필자는 해외연구기관과의 R&D(연구개발)협력을 추진하기 위해 러시아
독일 프랑스 등 유럽을 다녀왔다.

거리의 풍물은 필자가 지난 90년대초 벨기에 브뤼셀에서 상무관으로
근무하였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예전에 보았던 것이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유럽 여행을 자주 하여도 실증이 나지 않고 오히려 고향과 같이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이와 같이 유럽의 도시가 낯설지 않게 되는 이유는 옛것을 좋아하고
생활주변의 문화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유럽사람들의 노력의 성과라고
하겠다.

파리시내 도로 양편에 즐비한 석조건물들은 볼품이 없어 보이겠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에스컬레이터를 비롯한 각종 자동화 시설을 갖춘 인텔리전트 빌딩
이다.

바깥은 중세시대이나 안쪽은 첨단시대인 것이다.

우리 상식으로는 내부개조를 할 바에는 재건축 또는 재개발을 하여 완전히
새것으로 뜯어고치는 것이 경제적일텐데, 파리시민들은 조상들이 건축한 구식
건물을 보존하기 위해 이러한 개인적인 불이익을 참아낸다.

다시 말해 파리와 런던 시내에서는 자기 집 정원의 나무 한 그루도, 주택의
페인트 색도 자기 마음대로 바꾸지 못하고 공동의 조화를 찾는다.

이 때문에 서울 도심의 들쭉날쭉한 신축건물은 차갑고 날카롭게 느껴지는 데
비해 파리 시내의 구식 건축물들이 따뜻하고 부드럽게 보이는 것이다.

실제로 파리의 한 유명식당에는 1793년 프랑스혁명 당시 혁명가가 식탁에서
즉결처형을 당하면서 흘린 피가 지금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다.

매년 정기적으로 파리시청의 공무원이 나와서 보존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할
경우는 시에서 유지비용을 지불한다.

문화재 보전을 위해서는 민과 관이 따로 없는 셈이다.

과거의 흔적을 아무런 생각없이 없애버리는 서울과 달리, 옛것을 고수하는
파리와 로마 런던이 있기에 프랑스와 이탈리아 영국 등은 문화강대국이
되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