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경기를 구경하다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우리 선수가 결정정인 기회를 잡았는데 상대방 선수의 반칙으로 경기흐름이
끊어지는 경우다.

그래서 축구에는 독특한 규칙이 있다.

소위 어드밴티지 룰(advantage rule)이다.

원래 럭비에서 나온 규칙이다.

경기상황에 따라서는 반칙한 팀에게 벌을 주기 위해 경기를 중단시키면
오히려 반칙당한 팀에게 불리해질 수도 있다.

반칙을 당하고도 공을 빼앗기지 않고 유리한 위치에 있을 경우가 그렇다.

이럴 때는 반칙이 있었더라도 휘슬을 불지 않고 경기를 계속시키는게
합리적이다.

이때 적용하는 규칙이 바로 어드밴티지 룰이다.

이 규칙이 있는 덕분에 경기가 자주 끊어지지 않는다는 게 장점이다.

시합이 더 재미있을 게 틀림없다.

관중들도 덜 안타까울 것이다.

그러나 이 규칙이 남발되면 그것도 문제가 아닐수 없다.

반칙을 한 선수에게 아무런 제재가 가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의의 원칙에
어긋난다.

반칙이 재발되는 동기를 부여할수 있다는 얘기다.

경기흐름만을 중시해 계속 반칙을 제재하지 않다보면 게임의 룰 자체가
경시될 가능성이 있다.

비단 스포츠의 경우에만 그런 건 아니다.

얼마전 잇따라 터진 여러 사건들을 보면서 어드밴티지 룰의 남용을 떠올리게
된다.

고급 옷로비사건, 조폐공사 파업유도 의혹사건, 50억원 돈선거의혹등
국민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일들이 어떻게 처리될지 궁금한 탓이다.

혹시나 이번에도 어드밴티지 룰이 다시 적용되는건 아닐까.

누구나 한번쯤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각종 비리 의혹사건이 터졌을 때 그것이 어떻게 처리됐는지를
돌이켜 보면 이해가 간다.

과거의 비리 의혹사건엔 어드밴티지 룰이 너무 흔하게 적용됐다.

기업인에겐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에, 정치인의 경우엔
정국의 안정을 위해 "이번만은 봐준다"는 논리가 만들어졌다.

어찌보면 축구보다도 간단했다.

축구야 수천 수만명이 보고있기 탓에 잘못 판정했다간 엄청난 사태가
벌어진다.

비리 의혹사건에 어드밴티지 룰이 자주 적용되면 그 폐해는 "벌받을 사람이
벌을 받지 않았다"는 원칙의 훼손에 그치지 않는다.

축구시합에서 나타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 발생한다.

외환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됐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만연하게 된다.

기업경영을 잘못해 부도낸 기업인, 부도날 기업에 거액을 대출해준 금융인이
전혀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현상은 이미 경험한 대로다.

비리 의혹 사건을 덮어 부패가 만성화되면 그야말로 경제전체가 흔들리는
위기로 치닫고 만다.

주요 외환위기 국가들을 보면 하나같이 부패도가 높은 나라들이다.

국제청렴기구가 발표한 청렴지수에 의하면 98년 기준으로 한국은 85개
조사대상국 가운데 43위다.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등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심지어 해외에선 한국을 ROTC(Republic of total corruption. 총체적 부패
공화국)라고 부를 정도다.

외환위기 국가였던 태국은 요즘 부패척결에 발벗고 나섰다는 소식이다.

국회에는 부패행위 척결을 위한 위원회가 구성됐고 경찰은 총리의 지휘아래
부패행위를 조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외환위기의 재발을 막기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부정방지위원회가 생겨 부패 척결에 나선다는 소식이다.

제2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는 부패방지법을 조속히 제정하도록 김대중
대통령에게 건의했다고 한다.

또 3급이상 공무원에게 경조사때 축의금이나 조의금을 받지 못하게 하고
유흥업소와 고급의상실 출입을 금지시킨다고 한다.

이른바 공직자 10대 준수사항이다.

비록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의 대책이긴하나 서둘러 뭔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고급옷로비 사건등 떠들썩하게 했던 일들이
망각속으로 사라질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치고 취임 첫마디부터 부패척결을 강조하지 않은 이가 없다.

그만큼 국가적인 최우선 과제의 하나였고 국민들의 한결같은 희망사항이었다

그러나 고급옷로비 사건은 이런 기대를 저버린 것이 되었다.

이런 사건이 터지자 부리나케 새로 법을 만들고 기구를 구성한다는 건
부패방지를 위한 그간의 노력이 실패였음을 자인하는 거나 다름없다.

물론 이런 제도나 규칙이 있는게 없는것 보다는 나을지 모른다.

그러나 과거에 실패한 원인이 제도나 기구가 없었던 탓만은 아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어드밴티지 룰을 남용한 결과이다.

이래서 봐주고 저래서 봐주는건 개혁이라고 할수 없지 않을까.

< ygp@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