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위원들의 토론을 거쳐 확정된 "공직자 10대 준수사항"은 공직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해 부심하는 정부의 고충을 읽게 해 준다.

그러나 이것이 공직자들의 기강을 바로 세우는데 얼마나 기여할지는
의문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냉소하고 있다.

지나치게 공무원들의 행동을 제약하는데다 일부 내용이 비현실적이며 준수
여부도 일일이 감시할 수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옷 뇌물 의혹 및 파업유도 발언으로 빚어진 민심을 되돌리려는 미봉책이
아니냐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공직자들의 독직 오직 뉴스는 신문에서 빠지는 날이 없다.

그것도 직급의 고하를 가리지 않는다.

부정부패의 뿌리가 깊고 그만큼 구조적이라는 반증이다.

때문에 역대 정권들도 모두 나름대로 공직기강의 확립과 부정부패 청산을
외쳐왔다.

70년대 박정희 정권의 서정쇄신, 80년대 전두환 정권의 정의사회 구현,
90년대 김영삼 정권의 윗물맑기 운동 등이 그것이다.

이것들은 주로 출범 초기에 정권의 지지기반 강화 또는 분위기 쇄신을 노린
정치적 목적에서 단행됐다.

그래서 한결같이 실패로 끝났고 부패의 양과 질은 더욱 고약해졌다.

이번에는 과거보다 실질적이고 실천적인 측면이 강화됐다.

선언적 의미에 지나지 않는 현행 공무원 윤리헌장에 비해서도 실용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선전에 그쳤던 과거로부터 크게 교훈을 얻은 것
같지는 않다.

별 실효성도 없을 뿐더러 선량한 공직자들의 사기만 떨어뜨릴 가능성이
크다.

우리 사회 부패고리의 맨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는 정치권을 제쳐놓고 모든
공직자에게 족쇄를 채운다고 하루아침에 깨끗한 사회가 이뤄지지는 않는다.

공직부패의 상당 부분이 정치권과 먹이사슬 관계를 이룬다는 점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국민에게 꼭 필요한 공공 서비스는 무엇이며 납세자들이 그 대가로
공직자에게 보상해야 할 적정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특히 하위직 공무원들의
보수가 생활급에 이르는지 여부도 세심하게 따져봐야 한다.

채찍은 물론 당근도 꼭 필요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분위기에 휩쓸린 대증요법만으로는 결코 부패의 뿌리를 뽑을 수 없다.

기업간의 납품비리, 아파트 관리비 비리사건 등으로 드러난 기업과 개인들의
부패도 공직부패와 함께 체계적으로 척결해야 한다.

접대문화가 관행으로 자리잡은 우리 풍토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멀리는 봉건시대부터 내려온 부패구조를 하루아침에 고칠 수 있다고 기대
해서도 안 된다.

대다수 국민이 공감하고 꾸준히 실천하는 가운데 나날이 사회가 맑아지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