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한국과 미국에서는 두 명의 고위 금융관계자가 잇따라 사표를
던졌다.

금융통화위원회 곽상경 위원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앨리스
리블린 부의장이 그들이다.

이들은 비슷한 시기에 사표를 냈다는 것 외에도 공통점이 적지 않다.

일국의 금융.통화 정책을 결정하는 막중한 위치에 있는 것이 그랬고 임기를
마치지 않은 상태였다는 것도 같다.

인플레 조짐이 있는 양국에서 그동안 금리 인상을 줄기차게 반대해 온 경력
까지 비슷하다.

그런데 양국 언론들이 보도한 사임 배경을 보면 느낌이 자못 다르다.

먼저 지난 3일 사직서를 제출한 리블린 부의장의 경우를 보자.

현지 언론들은 "FRB내에서 대표적인 신경제론자로 꼽히는 리블린 부의장이
금리정책 결정 과정에서 자신의 주장과 달리 금리가 인상될게 확실시 되자
사표를 냈다"고 보도했다.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FRB의 2인자"지만 현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동료들과 시각차를 확인하자 미련없이 사표를 던진 것이다.

그녀는 내달 민간 연구소를 자리를 옮길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으로는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여유있는 말과 함께.

그런데 곽 위원의 말에선 여유보다는 배신과 좌절의 느낌이 짙게 묻어난다.

그는 사표를 제출한 다음날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제대로 토론도
못하고 우두커니 거수기 역할만 하는 금통위가 싫었다"고 토로했다.

통화정책을 결정해야 할 금통위가 재경부와 한국은행이 이미 결정한 사항을
거수로 통과시키는 "꼭두각시" 역할만 하는데 대한 자괴섞인 목소리다.

좌절감을 느껴오던 터에 전 직장인 고려대학교에서 국제대학원장직을
제의하자 바로 사표를 던졌다는 것이다.

FRB의 리블린 부의장이 스스로 조직을 버렸다면 곽 위원은 조직이 그를
내쫓은 격이다.

금통위가 "통과위"라는 소리를 들어 온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일각에서는 손만 들어주고 용돈을 챙기는 "아르바이트"자리라는 소리마저
나온다.

FRB와 금통위는 정부조직법상 막강한 힘을 가진 조직들이지만 영향력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크다.

이는 두 나라간 경제력의 차이보다는 사람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직을 시스템화 했느냐 못했느냐의 여부에 더 큰 요인이 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은 정책 결정상의 효율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케 한다.

< 박수진 국제부 기자 parksj@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