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차관급회담 합의] 남북관계 해빙 '물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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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간의 베이징 차관급회담 합의는 북한이 "남북대화의 틀"에 들어오게
됐음을 의미한다.
남북관계가 "대화없는 대립"에서 "대화를 통한 화해와 협력"으로 전환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따라서 이번 회담 개최의 의미는 <>이산가족문제 해결의 가시화 <>당국간
대화 정례화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를 위한 돌파구 마련 등으로 요약된다.
남북은 민족의 숙원인 "이산가족문제"로 차관급 회담의 첫단추를 채웠다.
특히 예비접촉에서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을 위한 분야별 공동위원회도
가동하기로 했다.
향후 회담의 진전 정도에 따라 장관급.총리급 회담의 성사를 점칠 수 있는
대목이다.
차관급 회담이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김대중 대통령)으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정부가 이산가족 문제에 대해 어느때보다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
임동원 장관은 "(이산가족의 방문과 서신교환은) 빈도의 문제이지 성사
자체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이같은 평가는 이산가족 문제가 "공식적 해결과정"의 틀에 진입한
것을 의미한다.
남북은 베이징 예비접촉을 통해 생사확인, 서신교환, 상봉 등 구체적인
부분에 대해 상당한 의견접근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생사확인 대상자의 명단 확인, 이산가족 고향방문, 면회소 설치 등
시범적 조치도 병행해 나가기로 했다.
<> 차관급 회담 방식 =우리 정부는 지난해 비료회담의 결렬을 교훈삼아
비료지원문제는 예비접촉에서 우선 해결하고 차관급 회담에선 이산가족
문제만 집중적으로 논의하기로 했다.
상호주의의 탄력적 적용이며 "선공후득(먼저 주고 나중에 받는다)"의
지혜를 발휘한 셈이다.
<> 회담이 성사되기까지 =남북한은 그간 비공개 라인을 통해 장기간 예비
접촉을 해왔다.
차관급 회담이 구체화된 것은 지난 4월 중순부터인 것으로 알려진다.
우리측의 제의를 북측이 수용했으며 비공개접촉은 4월 23일부터 6월 3일
까지 한차례 예비접촉을 포함해 4차례 진행됐다.
<> 회담 대표는 =남북한에서 각각 수석대표를 포함한 3명의 대표단이
차관급회담에 나선다.
북측 수석대표론 전금철 내각 아.태 평화위 부위원장이 유력하다.
우리측에선 양영식 통일부차관이 협상을 담당할 것으로 알려졌다.
<> 이산 가족 현황 =남한내 실향민은 2.3세대를 포함해 약 7백67만명(이북
5도위 추정치)에 달한다.
해방 이전 이북에서 출생한 실향민 1세대는 약 1백22만6천명이며 이중
60세 이상이 69만명 정도다.
5월말 현재 이산가족 교류는 생사확인이 1천5백여건, 서신교환이
4천8백여건, 제3국 상봉이 3백60건이다.
정부는 북한과의 이산가족 교류가 합의되면 북측에 심인의뢰서를 발송하고
회신을 받아 생사확인-서신왕래-상봉-고향방문의 수순을 밟을 계획이다.
< 이의철 기자 eclee@ >
[ 남북관계 주요 일지 ]
<> 72년 7월4일 남북공동성명 발표
<> 72년 8월29일~73년 7월13일 남북적십자 본회담(총 7차)
<> 73년 8월18일 남북직통전화 개설
<> 84년 11월15일~85년 12월13일 남북경제회담(총 5차)
<> 88년 8월19일~90년 1월24일 남북 국회회담 준비접촉(총 10차)
<> 90년 9월4일~92년 9월15일 남북 고위급회담(총 8차)
<> 90년 11월29일~91년 2월12일 남북체육회담
<> 95년 6월17일~95년 9월30일 남북식량지원회담(베이징)
<> 98년 4월11일 남북 차관급 비료회담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4일자 ).
됐음을 의미한다.
남북관계가 "대화없는 대립"에서 "대화를 통한 화해와 협력"으로 전환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따라서 이번 회담 개최의 의미는 <>이산가족문제 해결의 가시화 <>당국간
대화 정례화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를 위한 돌파구 마련 등으로 요약된다.
남북은 민족의 숙원인 "이산가족문제"로 차관급 회담의 첫단추를 채웠다.
특히 예비접촉에서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을 위한 분야별 공동위원회도
가동하기로 했다.
향후 회담의 진전 정도에 따라 장관급.총리급 회담의 성사를 점칠 수 있는
대목이다.
차관급 회담이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김대중 대통령)으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정부가 이산가족 문제에 대해 어느때보다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
임동원 장관은 "(이산가족의 방문과 서신교환은) 빈도의 문제이지 성사
자체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이같은 평가는 이산가족 문제가 "공식적 해결과정"의 틀에 진입한
것을 의미한다.
남북은 베이징 예비접촉을 통해 생사확인, 서신교환, 상봉 등 구체적인
부분에 대해 상당한 의견접근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생사확인 대상자의 명단 확인, 이산가족 고향방문, 면회소 설치 등
시범적 조치도 병행해 나가기로 했다.
<> 차관급 회담 방식 =우리 정부는 지난해 비료회담의 결렬을 교훈삼아
비료지원문제는 예비접촉에서 우선 해결하고 차관급 회담에선 이산가족
문제만 집중적으로 논의하기로 했다.
상호주의의 탄력적 적용이며 "선공후득(먼저 주고 나중에 받는다)"의
지혜를 발휘한 셈이다.
<> 회담이 성사되기까지 =남북한은 그간 비공개 라인을 통해 장기간 예비
접촉을 해왔다.
차관급 회담이 구체화된 것은 지난 4월 중순부터인 것으로 알려진다.
우리측의 제의를 북측이 수용했으며 비공개접촉은 4월 23일부터 6월 3일
까지 한차례 예비접촉을 포함해 4차례 진행됐다.
<> 회담 대표는 =남북한에서 각각 수석대표를 포함한 3명의 대표단이
차관급회담에 나선다.
북측 수석대표론 전금철 내각 아.태 평화위 부위원장이 유력하다.
우리측에선 양영식 통일부차관이 협상을 담당할 것으로 알려졌다.
<> 이산 가족 현황 =남한내 실향민은 2.3세대를 포함해 약 7백67만명(이북
5도위 추정치)에 달한다.
해방 이전 이북에서 출생한 실향민 1세대는 약 1백22만6천명이며 이중
60세 이상이 69만명 정도다.
5월말 현재 이산가족 교류는 생사확인이 1천5백여건, 서신교환이
4천8백여건, 제3국 상봉이 3백60건이다.
정부는 북한과의 이산가족 교류가 합의되면 북측에 심인의뢰서를 발송하고
회신을 받아 생사확인-서신왕래-상봉-고향방문의 수순을 밟을 계획이다.
< 이의철 기자 eclee@ >
[ 남북관계 주요 일지 ]
<> 72년 7월4일 남북공동성명 발표
<> 72년 8월29일~73년 7월13일 남북적십자 본회담(총 7차)
<> 73년 8월18일 남북직통전화 개설
<> 84년 11월15일~85년 12월13일 남북경제회담(총 5차)
<> 88년 8월19일~90년 1월24일 남북 국회회담 준비접촉(총 10차)
<> 90년 9월4일~92년 9월15일 남북 고위급회담(총 8차)
<> 90년 11월29일~91년 2월12일 남북체육회담
<> 95년 6월17일~95년 9월30일 남북식량지원회담(베이징)
<> 98년 4월11일 남북 차관급 비료회담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