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되돌아볼 때 전쟁의 원인은 좀더 나은 자원을 확보하는데 있었다.

자원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땅 천연자원 노동력 등이 과거의 주요 자원이었다면 오늘날 가장 가치있는
자원은 바로 "정보"다.

정보는 독점할 때 가치가 무한히 커진다.

상대방이 이것을 공유하지 못하도록 방어하는 게 필수적이라는 얘기다.

이때 정보를 독점하는 계층과 정보를 필요로 하는 계층 사이에는 충돌이
발생한다.

이것이 바로 "정보 전쟁"이다.

정보를 독점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최대한 그 정보가 경쟁 관계에 있는
상대편에게 누설되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이를 위해 대표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암호"다.

암호란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를 왜곡(distortion) 시키는 작업을
말한다.

"암호"라고 하면 우선 영화 "007"에서처럼 스파이를 동원한 국가간의 치열한
정보 쟁탈전을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 일상 생활에서도 부지불식간에 변형된 암호를 경험하고 있다.

야구에서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는 코치의 몸짓(sign) 이라든지, 특정
집단에 의해 사용되는 은어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암호는 영화의 소재로도 자주 등장한다.

최근 개봉된 영화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은 천재시인 이상의 시가
일제의 거대한 음모를 다루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또 외계인을 따뜻한 관점에서 그리고 있는 로버트 제멕키스의 "콘택트
(contact)"에서 외계인은 일종의 암호를 통해 인간에게 기술의 비밀을
전달한다.

컴퓨터를 소재로 한 하이테크 영화 "스니커즈(sneakers)"는 암호판독기
쟁탈을 위한 투쟁을 그리고 있다.

그렇다면 암호를 만들 때 "비밀열쇠"에 해당하는 것에 무엇이 있을까.

비밀열쇠의 조건으로는 암호화하기는 쉽고, 풀기는 매우 어려워야 한다.

이 조건을 만족시키는 가장 이상적이고 널리 사용되는 것이 바로 "소수"다.

소수는 1과 자기자신으로 말고는 나눠지지 않는 숫자다.

가령 3, 5, 7, 11, 13, 17, 19, 23.... 등이다.

이들 소수를 이용해 비밀열쇠를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자릿수가 매우 큰 두 개의 소수를 약속으로 지정한 뒤 이들을 서로
곱해 더욱 큰 합성수를 만든다.

이 합성수는 1과 자기 자신 외에 약수가 두 개 있지만 컴퓨터를 이용한다
해도 그것을 알아내는 데에는 엄청나게 긴 시간이 걸리게 된다.

실제로 소인수 분해 알고리즘을 통해 56비트로 돼있는 비밀 암호 키를
무작위로 찾아낼 때 지금의 컴퓨터로는 약 1천년이 걸리게 된다.

초등학교 산수 때부터 자주 등장하는 소수가 현대의 "정보전쟁"에 매우
강력한 무기로 돌변하게 되는 것이다.

요즈음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투시카메라" 등장이 이에 맞서는
옷감의 개발을 촉진시켰듯이 소수를 이용한 암호 체계도 양자컴퓨터(Quantum
Computer) 라는 신기술에 의해 크게 위협받고 있다.

이 기술은 실제 산업에 직접적으로 응용된 적이 없었던 양자역학 이론을
기초로 한다.

양자전산의 데이터베이스 검색 알고리즘은 기존의 컴퓨터보다 지수적으로
빠른 시간에 소인수분해를 하기 때문에 소수 암호 체계를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린다.

중국 고사성어 중에 "모순"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논리성이 결여된 패러독스(paradox)의 위험성을 지적한 것이지만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서로 대립되는 두 개체가 발전에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시대 어느 상황에서든지 더 날카로운 창의 개발은 더 튼튼한 방패의
개발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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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지훈

<>한국과학기술원(KAIST)
<>영화동아리 은막 회장
(원자력공학과2년)
<>pania@cais.kaist.ac.kr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