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분 < 방송 작가 >

극과 극은 "순간"에 통한다.

2년전 여름 난 "골프는 비난받아 마땅한 운동"이라고 단언했었다.

촬영장소가 꼭 골프장이어야 했던 그 여름.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아니면 방송국 카메라는 어디서나 쌍수를 들어
환영해야 했는데...

그 골프장이라는 동네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유불문하고 촬영불가.

처음부터 끝까지 "노"였다.

수십통의 전화끝에 겨우겨우 S골프장의 촬영허가를 얻었다.

TV화면으로만 보다가 난생 처음 본 골프장.

난 그 경관에 입이 딱 벌어졌고, 그 푸르름에 질식할 듯했다.

"오호! 이 좋은데를 자기네끼리만 누리려고 그렇게 촬영불가를 외쳤군.
잔디 백평 보기도 힘든데 순 잔디로만 몇만평. 게다가 저 넓은 잔디밭에
너댓명만이 걸어 가는군. 저건 또 뭐야. 누군 골프치는데 누군 백메고
따라가고"

난 골프와 영원히 친해질 것 같지 않았다.

골프는 역시 불평등한 운동이었다.

그러나 그같은 미운털에도 불구, 얼마후엔 내가 골프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골프 프로그램을 맡고 있었던지라 실제 골프를 쳐야 대본을 제대로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

난 중고채를 얻어 머뭇머뭇 연습장에 등록했다.

6개월후 난 골퍼로서 골프장을 찾았고 그리고 즉시 변절했다.

"골프장이 아니면 이곳은 그냥 야산에 불과할거야. 야산에서 무슨 생산성이
있겠나. 땅 좁고 인구 많은 우리나라에선 뭐든지 활용해야지"

이런 얘기에도 난 공감했고 그렇게 안쓰럽게만 생각되던 캐디들도 골퍼들을
도와주는 전문 직업중 하나라는 인식이 생겼다.

직접 겪어본 필드는 불평등의 세계라기보다 지친 우리를 변화시켜주는
"또하나의 자연"일 뿐이었다.

골퍼들은 다 나같은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지독히 미운 운동"에서 "없으면 안될 연인"으로의 급반전.

꺼려야 하는 대상에서 벗어나려면 역시 직접 뛰어드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