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호균 사장

국내 최대의 토털 잡화업체 레더데코 쌈지는 별난 상품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사람 혀 모양의 굽이 달린 신발, 마치 반짝이는 비늘의 물고기 한마리가
들어가 있는 것 같은 가방, 신라 시대 왕관을 연상케하는 액세서리 등 쌈지
매장에는 어떤 패션 브랜드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디자인으로 가득 차 있다.

라벨만 떼어내면 쉽게 구별되지 않는 타 브랜드와는 확실히 다르다.

쌈지 제품은 그 신선함만으로 패션계는 물론 미술가들에게 "예술적 기운으로
가득 찬 실용상품"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쌈지 상품이 고유한 색깔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이 브랜드만의 특별한
디자인 개발법 덕분이다.

많은 패션업체가 매시즌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 제시하는 "세계적인 트렌드"
를 쫓아가기 바쁘고 결국 비슷비슷한 상품을 내놓게 된다.

반면 쌈지는 디자인 모티브를 "아트(art)"에서 찾는다.

실험적인 미술가와 언더그라운드 가수를 후원하고 그들의 디자인을 자사
상품에 응용하거나 영감을 얻고 브랜드 이미지에 연결시키는 것이다.

아트마케팅이라고 불리는 이 작업은 80년대 중반 쌈지의 첫 출발부터
시작됐다.

당시 레더데코가 내놓아 폭발적 인기를 모은 일명 "거지백"은 국내
패션잡화 디자인에 변화의 바람을 몰고왔다.

그때만 해도 잡화 디자이너들은 가죽으로 만든 핸드백은 딱딱한 사각형
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레더데코는 부드러운 가죽에 사각틀이 없는 디자인의 가방을
선보였고 이것이 젊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쌈지의 천호균 사장은 첫 작품인 거지백의 모티브가 바로 팝아트였음을
밝힌다.

60년대 미국의 팝아티스트 올덴버그는 "조각은 왜 늘 딱딱해야 하느냐"고
의문을 제기하며 "부드러운 조각(Soft Sculpture)"을 발표했다.

천 사장은 올덴버그의 발상을 가방 디자인에 응용, 부드러운 가죽백을
탄생시켰다.

천 사장의 아트마케팅에 대한 신념은 93년 토털 액세서리 브랜드 쌈지
(주머니의 순 우리말)를 오픈하며 더욱 적극적으로 굳어진다.

쌈지 매장에서는 주력 상품인 핸드백외에도 선글라스와 같은 액세서리,
여성작가들의 판화 작품과 음악CD등을 함께 판매했다.

지금은 이처럼 탈장르, 복합주의를 표방한 매장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구성이었다.

쌈지 매장은 곧 젊은이들에게 화제가 됐다.

특히 이곳에서 파는 패션 선글라스는 브랜드 전체 매출의 80%까지 차지하며
인기를 끌었다.

그때까지 선글라스는 안과병원이나 전문상가에서나 살 수 있었다.

쌈지가 이 "기능성 제품"에 패션이라는 날개를 달아준 것이다.

이후에도 상업적 디자인 아이디어를 예술에서 빌려오고 다시 마케팅에
활용하는 쌈지의 행보는 계속된다.

신상품 품평회를 페인팅과 같은 퍼포먼스 형태로 꾸미는가 하면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작업실을 지원하는 아트 스튜디오를 지금도 운영하고 있다.

또 미술 작가의 작품 한끝에 쌈지 로고를 삽입해 자사 이미지로 활용한
아트 광고 시리즈를 선보였다.

최근에는 황신혜 밴드, 어어부, 허벅지 등 언더그라운드 밴드와의 교류를
모색중이다.

쌈지는 시대와 유행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시대를 앞섰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가진 작가들의 감각을 빌려 소비자 감각을 미리
예측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작품과 상품의 경계를 무너뜨린 예술적 상품을 계속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 설현정 기자 so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