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트만은 놓칠 수 없다"

97년 12월 국내 벤처기업 1호 큐닉스컴퓨터의 부도, 청산절차, 집단퇴사..

당시 큐닉스 연구소 프로젝트 매니저였던 남무현(35)씨는 이런 상황에서
프린터에 대한 애착이 더욱 깊어졌다.

10여년간 정든 회사를 떠야할 처지였지만.

창업을 생각해본 적이 없던 남씨.

서울대 계산통계학과 졸업후 소프트웨어 개발이 좋아 큐닉스컴퓨터에
입사했던 샐러리맨이었다.

그런 그가 갑작스런 회사 부도로 전직이나 창업을 택해야 할 기로에 서게
됐다.

"법정관리든 화의든 회사가 살아날 가능성만 보였어도 눌러앉았을 겁니다.
레이저프린터에 관한 한 최고로 인정 받았으니까요. 다른 후발 업체로
옮겨가는 것을 자존심이 허락치 않더군요"

그가 설명하는 창업배경이다.

그를 비롯한 마케팅 개발 제작 자재 등 프린터 관련 5개 팀의 팀장들은
이렇게 뭉쳤다.

각자 퇴직금 예금 등을 털어 98년1월 자본금 5억원의 법인 베리텍을 세웠다.

그가 대표를 맡은 이유는 단순하다.

큐닉스에서 3년여간 개발 기획 생산 등 총괄매니저를 맡아 대내외 업무를
해본 경험이 있다는 점 때문.

그보다 다섯살 연상의 직속상관인 이호래씨는 "이사 직함으로 기술연구소를
맡겠다"고 고집했다.

15년여간 프린터만 전문 개발해온 국내 최고 권위자로서의 자존심이었다.

베리텍은 큐닉스 직원 19명으로 출발했기에 사실상 큐닉스의 축소판이었다.

그러나 작지만 응집력은 더 강했다.

한사람도 흐트러짐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다들 회사주식을 가진 주인으로서 능력의 1백20%를 발휘했다.

그 결과는 단기간내 성공으로 나타났다.

5월 제품을 첫 출시했고 연말까지 5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첫해부터 1억7천만원의 순익을 내는 기록을 세웠다.

큐닉스의 판매망을 70%나 살린 것이 성공 요인.

4개월여간 발로 뛰며 베리텍의 역량과 각오를 알린 것이 주효했던 것.

올해는 1백20억원의 매출을 계획하고 있다.

남사장은 회사를 키우겠다는 생각으로 과감한 변화와 변신을 추구하고 있다.

맨손으로 시작, 매출 1천5백억원대 기업으로 성장시킨 큐닉스의 벤처정신은
이어받되 부실요소는 처음부터 도려냈다.

현금거래를 원칙으로 하고 빚 없는 경영을 실천하는 것.

초기에 융자 대신 신보창투로부터 4억5천만원의 투자를 받은 것도 이런
이유다.

남사장은 큐닉스 스타일에 고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올들어 공개채용
방식으로 인재를 뽑고 있다.

현재 직원은 32명.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근무하며 종종 떠들썩한
소주파티로 스트레스를 풀고 단합한다.

낚시가 취미인 차분한 성격의 남사장이지만 파티 때는 사원들과 하나가 돼
요란스레 즐기기도 한다.

창업초기의 젊은 사장은 특히 직원들에 대한 배려가 남다르다.

급여체계는 전사원 연봉제. 급여수준은 대기업보다 약간 높은 편이다.

최고 연봉자는 사장이 아닌 이호래 이사.

지난해말 회사가 순익을 내자 남사장은 사원들에게 특별보너스를 주어
사기를 북돋웠다.

"베리텍의 1차 목표는 향후 5년내 큐닉스 당시 프린터매출(1천억원)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세계시장에서 미국 일본 브랜드를 제압하는
것이지요. 풍부한 경험을 지닌 인재들이 최정상(베리) 기술(텍) 보유의
비전을 공유하고 있어요"

남사장은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 문병환기자 mo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