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당야로불식자
반척시서침두면
한향가인색주상
취필사화화역취

까막눈 시골 영감이,
옛날 책 괴어베고
잠을 자다가,
부스스 일어나 술 퍼마시고서,
취하여 꽃 그리니
꽃도 취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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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화암이 붉은 모란꽃 그림에 붙여 써넣은 시다.

그림 그리는 사람은 마음이 깨끗하고 욕심이 없어야 하며 작품에 임하여도
자유분방 거칠 것이 없어야 한다.

문자지식이 전무하고 학문교양 따위에 아랑곳 하지 않는 시골영감이 옛날
책을 반자 높이로 괴어 베고선 낮잠을 자고, 술 마시고 모란을 그리니 그
모란이 함께 취하여 붉다.

화가와 그림과 시가 또한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이병한 < 서울대 명예교수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