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카르텔은 깨질 수 밖에 없다. 그 이유를 설명하라"

경제학시간에 흔히 접할 수 있는 대표적인 시험문제 중 하나다.

좋은 점수를 받으려면 이른바 지대(rent)가 생기는 원인을 그림으로
설명하고 카르텔 구성원 중 누군가는 반사이익을 챙기려는 사람(cheater)이
있게 마련이라고 답해야 한다.

이런 틀에서 보면 최근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감산을 결정하고 이를통해
가격을 올리려는 노력은 실패할 것이고 따라서 유가는 머지않아 안정을
되찾을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긴다.

현재 전세계적인 원유공급은 초과상태(glut)를 보여주고 있다.

아시아국가 등의 위기로 수요침체가 맞물린 상황에서 하루 평균 8천만 배럴
이상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니 제값을 받기 어렵다.

궁리 끝에 OPEC와 몇몇 산유국들은 생산량을 줄이자고 굳게 약속했다.

예상대로 가격이 오르고 있다.

그러나 순진하게 감산약속을 지키려 들다보면 혼자만 바보가 될 지 모른다.

누군가 합의를 깨고 뒤에서 자기호주머니 챙기기에 바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차제에 나도 "뒷 도둑질" 대열에 참여해야 하는 것 아닌가..."

OPEC의 일원이라면 누구라도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해 보았을 지 모른다.

실제로 OPEC와 일부 산유국은 지난달 하루 2백10만 배럴씩을 감산하자고
합의했다.

하지만 이들은 과거에 체결한 합의조차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OPEC는 하루 1백70만 배럴을 감산하기로 했지만 아직까지
1백20만 배럴 밖에 줄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즉 회원국 중 누군가는 합의를 위반하고 매일 50만 배럴씩을 더 생산,
뒷 도둑질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감산키로 합의한 2백10만 배럴도 전세계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치면 2.6%에 불과한 규모다.

어찌됐건 OPEC의 최근합의는 일시적인 불안심리를 자극, 한자리수까지
떨어졌던 유가를 상당히 올려 놓았다.

하지만 이같은 가격상승 추세가 지속되리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원유개발 장비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는 뉴저지 소재 CIT그룹의 마이클
파스라우스키 부사장 같은 이는 유가가 올해 중 배럴당 11달러, 내년에는
12달러 정도에서 안정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담합에 의한 인위적 유가인상이 OPEC회원국들의 감산노력 만으로 유지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OPEC가 감산을 통해 가격을 올려 놓으면 담합에 가담하지 않고 있는
영국이나 노르웨이 등 비OPEC 회원국들이 더할 수 없이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없다.

"메뚜기도 한 철"이라며 이들이 더 많은 물량을 시장에 내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밖에 가격이 예상보다 더 오르는 경우 그동안 경제성이 없어 쉬고 있던
텍사스 오클라호마 캘리포니아 등 미국의 유정들도 재가동 될 가능성이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주변여건은 마치 "합의는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을 정도다.

사우디의 재정이 도산 상태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석유를 사용하는 국가시설을 가스용으로 바꾸는 작업을 이미
시작했다.

바닥난 금고를 채우기 위해 보다 많은 원유를 해외에 수출해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남미의 산유국 베네수엘라 또한 올해 초 원유생산을 매년 2%씩 늘릴
것이라는 계획을 이미 발표해 놓고 있다.

OPEC의 감산발표와 가격상승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없이는 못사는 미국인들
또한 별 것 아니라는 표정이다.

월가의 반응도 그리 민감하지 않다.

기름을 많이 사용하는 항공사들 또한 값이 쌀 때 이미 선물 계약을 해 놓아
크게 동요하지 않는 상황이다.

이런 현상들이야말로 OPEC의 담합과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실증적으로
반증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우리도 마음놓고 헤프게 써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원유를 전량 외국에서 들여와야 하는 우리로서는 유가야말로 이자율이나
환율보다도 더 중요한 경제변수인지 모른다.

< 워싱턴=양봉진 특파원 bjnyang@aol.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