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시간으로 지난 4일 오전11시(한국시간 5일 새벽0시) 미국에서 타계한
신병현 전경제부총리는 소신과 신념을 굽히지 않은 원칙론자로 유명하다.

어떤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은 그의 소신은 5공화국 초기 경제안정화의
초석을 다진 요인으로 작용했다는게 일반적 평가다.

원칙론자였던 신 전부총리의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 "곰바우"라는
생전의 그의 별명.

한번 원칙이 결정되면 우직할 정도로 밀고 나간다해서 이런 별명이 붙었다.

실제 그는 지난 80년9월부터 82년1월까지(10대), 83년10월부터 86년1월까지
(13대) 두차례에 걸쳐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을 지내면서 고집스럽게
"안정화정책"을 고수, 이런 성격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한국경제가 나락으로 빠져들던 지난 80년에도 경기부양책보다는 긴축정책을
밀어 부치는 뚝심을 고수했다.

오히려 어려운 경제상황을 빌미로 경제안정화기조를 더욱 강화하려 했다.

지난 83년 두번째로 부총리에 취임한 직후 84년예산을 동결하는 과단성을
보였다.

당시 여당이었던 민정당이 "84년 예산을 묶어버리면 85년초 총선을 어떻게
치르란 말이냐"고 결사 반대했지만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84년에는 군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상처음으로 방위비를 삭감한 일화는
유명하다.

경제안정을 위해선 물가안정이 필수이며, 이를 위해선 긴축정책을 고수해야
한다는 소신이 작용한 결과였다.

신 전부총리는 지난 21년 황해도 장연에서 태어나 43년 한국은행의 전신
조선은행에 입행했다.

이후 56년엔 33세란 최연소 나이로 한은조사부장에 올랐다.

64년엔 세계은행에 입행,교체이사 및 고문을 지냈다.

지난 75년 청와대 경제담당 특별보좌관으로 귀국한 뒤 78년부터 80년까지
제12대 한은총재를 지냈다.

80년 7월 상공부장관으로 입각했으며 2개월후인 9월 제10대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에 취임했다.

아웅산사태가 발생한 직후인 지난 83년10월부터 제13대 부총리를 지냈다.

둘째 딸 수경씨가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컴퓨터시스템 담당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비타스 IMF 유럽담당 이사가 둘째 사위이며 코오롱그룹 이동찬 명예회장의
넷째딸 은주씨가 며느리다.

빈소는 미국의 Gawler"s Jos&Sons Inc.5130 Wisconsin Ave.NW.
Washington DC.

연락처는 (미국) 202-966-6400번.

< 하영춘 기자 hayou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