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가 작년 하반기에 2차 내부거래조사를 벌여 2백9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던 5대그룹의 33개 계열사중 32개사가 행정소송을 제기했다고 한다.
과징금 액수가 극히 적은 한 회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행정소송을 냄에 따라
1차 내부거래조사때의 7백4억원을 포함,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 9백13억원이
사실상 거의 전액 행정소송대상이 된 셈이다.

우리는 여기서 수많은 과징금부과를 건별로 그것이 타당했는지 아닌지를
따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처럼 무더기 행정소송이 제기된 것은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전통적인 관과 기업간 역학관계에
비추어 행정소송은 그 자체가 극히 이례적인 일이란 점에서도 그렇지만,
공정거래정책의 특성을 감안할 때 더욱 그런 인식을 갖게 된다.

보행자가 교통신호를 지켰는지 지키지 않았는지 단순히 사실을 확인하는
일반적인 형사사건과 공정거래법 운용은 차원이 다르다.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한 처리를 공정위에 맡기고 있는 것도 경제관행과 현실을 감안한 정책적
판단을 선행하도록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내부거래 또한 여기서 예외는
아니다. 예컨대 빅딜의 과정에서 계열사지원 등 내부거래가 일어나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그것이 문제되지 않는 것은 전체 나라경제 차원에서 필요하다
는 정책적 판단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공정거래정책의 특성을 감안하면서 무더기 행정소송사태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런 사태가 빚어졌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경제현실과
관행에 대한 공정위와 기업간의 인식격차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금여유
가 있는 기업이 은행신탁에 돈을 맡겨 계열회사 CP를 매입한 것이 제재받아
마땅한 내부거래냐 아니냐는 논쟁이 빚어지는 것도 바로 그런 까닭에서다.

개정된 공정거래법에 따른 계좌 추적권까지 발동할 3차 내부거래 조사가
가까운 시일안에 있을 예정이고 보면 "부당 내부거래"에 대한 공정위와
업계의 시각차는 갈수록 문제가 될 것이 확실하다. 어느 쪽 주장이 옳은지는
사안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정위 주장이 설혹 1백% 타당하다 하더라도 업계로부터 사실상
1백% 행정소송을 당하는 꼴로 공정거래법을 운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내부거래에 대한 제재조치가 작년부터 처음 시작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관행화해온 것을 고치도록 하려면 행정지도와 일정기간의 유예조치가
있어야할 것은 당연한 상식이다.

칼자루를 쥐고 있다고 해서 밀어붙이는 것이 꼭 능한 행정은 절대로
아니다. 시장의 기본법이라고 할 공정거래법을 그런 식으로 운용해서는
더더욱 안된다. 곳곳에서 마찰과 불만만 낳는 꼴이 돼서는 문제다. 무더기
행정소송을 빚은 과징금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들은 뭔가 생각하는 바가
있어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