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준(김&장법률사무소.45) 변호사는 "마당발"이다.

그 넓은 지식재산권 분야에 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어서다.

넓게 자리를 잡다보면 깊을 수는 없는 법.

그러나 양 변호사는 깊기까지 하다.

산업재산권은 물론이고 저작권 신산업재산권에 이르는 모든 분야에 걸쳐
그의 이름이 빠지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양 변호사가 처음부터 지식재산권에 정통했던건 아니다.

그는 금융분야에서 이름을 날리던 변호사였다.

차관도입이나 중동건설공사 파이낸싱 같은 일이 그의 전문분야였다.

지난 87년이었다.

"통상법 301조를 내세운 미국과의 포괄협상이 타결되면서 특허법 저작권법
등 지식재산권 관련 법률이 모두 개정됐지요. 관련 국제조약에 잇따라 가입
하던 것도 그때입니다. 이거다 싶대요"

바로 뛰어들었다.

망설임은 없었다.

과감한 변신이었다.

그리곤 지금까지 한 우물만 팠다.

과감한 선택과 끈질긴 집중이 이 분야의 선두주자 양영준을 만들어 낸
셈이다.

그의 지론은 이렇다.

산업은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로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다는 것.

경제가 발전할수록 그렇다.

국내기업들은 아직도 눈에 보이는 것만을 가치로 생각하지만 선진 기업들은
강한 브랜드를 앞세운 라이선스 사업으로 떼돈을 벌고 있다.

그는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를 예로 들었다.

다른 회사에서 걷어들이는 특허사용료가 더 알찬 곳이다.

국내 산업이 발전할수록 이 분야의 일감은 많아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는 요즘 스웨덴 제약회사인 아스트라의 특허소송을 대행하고 있다.

로섹이라는 위장병약이다.

단일제품으로는 세계 최고의 매출을 올리는 약품이다.

세계 제약업계에서 아스트라가 랭킹 4~5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이 제품
덕분이다.

이 약은 장에서 녹아야 효능을 발휘한다.

그러나 산성에 약하다.

따라서 위에서 녹아버리는게 약점이었다.

이를 방지하고 장에서 녹도록 하는 것이 핵심 특허인 오메프라솔이다.

아스트라는 이 특허를 한미약품이 침해했다고 소송을 의뢰해 왔다.

"사실 화학이나 물리를 무척이나 싫어했습니다. 문과를 택한 것도 그
이유에서였지요. 그런데 이제 특허업무의 절반이상이 그런 쪽이니..."

오메프라솔 관련 소송은 1심에서 승소했다.

자체공정에 특허가 있더라도 기본기술 특허를 다른 사람이 갖고 있다면
특허를 침해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첫 판결이다.

그토록 싫어하던 분야의 서적을 깡그리 뒤져 내것으로 만든 결과다.

몬산토가 LG화학을 상대로 승소한 소성장호르몬 관련특허 소송도 같은
종류다.

우유가 많이 나오도록 하는 호르몬제다.

주사의 효능이 천천히 나타나도록 하는게 특허다.

전문지식 없이는 풀어내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상표권도 그의 영역이다.

샤넬 구치 폴로 등 귀에 익은 수많은 최고급 브랜드를 지켜야 하는게 그의
업무다.

업무가 그렇다보니 상표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

세계 유명브랜드의 상표는 머릿속에 모두 들어가 있다.

유사상표를 보면 담박에 집어내는 노하우도 당연하다.

양 변호사는 저작권 분야에서도 선두주자다.

한번은 히트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제목에 관한 저작권을
다룬 적이 있다.

영화제작사 (주)황기성사단은 영화제작에 들어가기전 자료수집 과정에서
같은 제목의 무용극을 찾아냈다.

제목만 사오라고 했더니 아예 판권까지 사들고 왔다.

고작 1백만원이었다.

한 지방대학의 여교수한테서였다.

그런데 영화가 히트를 치자 마음이 바뀌었는지 이 사람이 소송을 걸어왔다.

영화수입의 일정부분을 저작권료로 달라는 것이었다.

법원은 양 변호사의 주장을 인용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제호는 사상이나 감정의 표현이라고 볼 수 없어 저작권 보호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저작물의 제목은 별도로 보호되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으로 명시한 판례였다.

"저작권도 갈수록 중요해지는 부분입니다. 새롭게 탄생해 세상을 온통
뒤흔들고 있는 인터넷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지요. 집에서 영화를 보려면
과거에는 비디오테이프를 사거나 빌려다 봐야 했습니다. 앞으론 온라인상
에서 쉽게 꺼내 볼 수 있게 되지 않습니까"

문제는 끊임없이 발생할 것이라는 얘기다.

양 변호사의 "마당발"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 김정호 기자 jhkim@ >

[ 특별취재팀 = 최필규 산업1부장(팀장)/
김정호 채자영 강현철 노혜령 이익원 권영설 윤성민
(산업1부) 김문권 류성 이심기(사회1부)
육동인 김태철(사회2부)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