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재평가받는 레이거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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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이후 최장기간의 호황을 누리고 있는 미국 경제가 16일 다우지수
10,000포인트 돌파로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세계를 짓눌러 온 "Y2K"의 시름을 잠시나마 덜게 했다는 "10K(10,000포인트)
쾌거"는 미국 경제의 저력을 다시 한번 보여 주기에 충분했다.
이처럼 승승장구를 거듭하고 있는 미국이지만,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절망에 가까운 고통에 시달렸음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2차 오일쇼크를 맞았던 지난 80년대 초 미국의 실업률과 인플레율은 두자릿
수(각각 11%)를 기록했었다.
기준 금리인 재무부 채권수익률은 연15%를 웃돌았었다.
지금 물가가 제자리고 실업률이 전후 최저수준인 것과는 영 딴판이었다.
이처럼 미국 경제가 "상전"에서 "벽해"로 바뀐 요인을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회생의 디딤돌이 "레이거노믹스"를 통해 마련됐다는 데 이의를 다는
전문가는 없다.
미국 경제가 전후 최악의 수렁에 빠져있던 지난 81년 대통령에 취임한
레이건은 최대한의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는 데 경제정책의 초점을 맞추었다.
개인과 기업을 속박했던 고율의 세금을 낮춤으로써 소비지출 및 기업가
정신을 북돋웠다.
임금 물가 에너지가격 등에 씌워져 있던 행정규제의 자물쇠도 깨부수었다.
제조업에 이어 금융서비스와 항공 통신 등으로 규제철폐 작업을 전면 확대한
것도 레이건 행정부였다.
기업들을 멍들게 하는 노조들의 명분없는 쟁의행위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족쇄를 채웠다.
기업인들로 하여금 "기업할 맛"을 되찾아 준 전기였다.
물론 레이건 대통령은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재임기간 내내 경제문제에
관한한 "무능한 지도자"라는 낙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인플레 퇴치와 공급기반 확충을 겨냥한 고금리 및 감세정책이 인기를 끌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국고를 피폐화함으로써 무역과 재정에선 이른바 "쌍둥이 적자"가 급증
하기도 했다.
하지만 관료들의 반대를 무릅쓴 행정규제 철폐와 노조의 반대에 굴하지
않은 소신은 후대의 경제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기업 마인드를 되살려 놓은 업적은 일부 실책을 만회하고도 남는다.
질곡에 빠진 경제를 되살리는 데 골몰하고 있는 한국의 지도자들이 되새겨
볼 대목이다.
< 이학영 뉴욕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8일자 ).
10,000포인트 돌파로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세계를 짓눌러 온 "Y2K"의 시름을 잠시나마 덜게 했다는 "10K(10,000포인트)
쾌거"는 미국 경제의 저력을 다시 한번 보여 주기에 충분했다.
이처럼 승승장구를 거듭하고 있는 미국이지만,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절망에 가까운 고통에 시달렸음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2차 오일쇼크를 맞았던 지난 80년대 초 미국의 실업률과 인플레율은 두자릿
수(각각 11%)를 기록했었다.
기준 금리인 재무부 채권수익률은 연15%를 웃돌았었다.
지금 물가가 제자리고 실업률이 전후 최저수준인 것과는 영 딴판이었다.
이처럼 미국 경제가 "상전"에서 "벽해"로 바뀐 요인을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회생의 디딤돌이 "레이거노믹스"를 통해 마련됐다는 데 이의를 다는
전문가는 없다.
미국 경제가 전후 최악의 수렁에 빠져있던 지난 81년 대통령에 취임한
레이건은 최대한의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는 데 경제정책의 초점을 맞추었다.
개인과 기업을 속박했던 고율의 세금을 낮춤으로써 소비지출 및 기업가
정신을 북돋웠다.
임금 물가 에너지가격 등에 씌워져 있던 행정규제의 자물쇠도 깨부수었다.
제조업에 이어 금융서비스와 항공 통신 등으로 규제철폐 작업을 전면 확대한
것도 레이건 행정부였다.
기업들을 멍들게 하는 노조들의 명분없는 쟁의행위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족쇄를 채웠다.
기업인들로 하여금 "기업할 맛"을 되찾아 준 전기였다.
물론 레이건 대통령은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재임기간 내내 경제문제에
관한한 "무능한 지도자"라는 낙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인플레 퇴치와 공급기반 확충을 겨냥한 고금리 및 감세정책이 인기를 끌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국고를 피폐화함으로써 무역과 재정에선 이른바 "쌍둥이 적자"가 급증
하기도 했다.
하지만 관료들의 반대를 무릅쓴 행정규제 철폐와 노조의 반대에 굴하지
않은 소신은 후대의 경제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기업 마인드를 되살려 놓은 업적은 일부 실책을 만회하고도 남는다.
질곡에 빠진 경제를 되살리는 데 골몰하고 있는 한국의 지도자들이 되새겨
볼 대목이다.
< 이학영 뉴욕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8일자 ).